대한민국 관가는 지금 벽 허물기 MOU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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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한민국 관가 곳곳에서 부처끼리 양해각서(MOU)를 줄줄이 체결하는 진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MOU는 정식 협정에 앞서 맺는 합의로 일반적으론 기업 간이나 부처와 업체 간에 투자·지원 등의 상호 협력을 약속하는 문서다. 과거 정부에서도 부처 간에 MOU가 맺어진 적은 있지만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뒤 MOU 바람이 더욱 거세다. 박 대통령의 ‘칸막이를 없애라’는 특명이 내려진 뒤 지침에 부응하기 위한 신풍속도다.

 지난 6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외교부 청사에서 농업 분야의 국제개발사업 협력에 합의하는 MOU를 체결했다. 일주일 전인 지난달 30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윤 장관과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적개발원조(ODA) 등에서 협력한다는 MOU에 서명했다. 같은 날에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안전행정부가, 지난달 12일엔 교육부·관세청이 각각 창조경제와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MOU에 서명했다. 또 그달 9일엔 해양수산부·한국농어촌공사가 어촌 양식 협력을 맺고, 미래부·외교부도 정보통신기술 지원 협력 MOU를 발표했다.

 MOU 열풍은 다부처 간은 물론 지방에서도 진행 중이다. 미래부·경찰청·관세청이 도난 휴대전화에 대한 해외 밀반출 대책을 협력하는가 하면 미래부·환경부·해양수산부·기상청은 ‘정지궤도복합위성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또 조달청과 대전지방경찰청이 ‘안전한 대전 만들기’ 업무협약을 맺었 다.

 하지만 이면엔 공직사회의 관행적인 ‘하달행정’ ‘전시행정’이 엿보인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명지대 박천오(행정학) 교수는 “대통령이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앨 것을 강조하자 공직사회가 뭔가 보여 주기 위해 경쟁적으로 MOU에 나서는 조짐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달청과 대전지방경찰청이 맺은 ‘안전한 대전’ MOU에 대해 국회 안전행정위의 이찬열 민주당 간사는 “조달청의 국가 조달 전자시스템인 ‘나라장터’ 를 통해 대전경찰청이 안전 예방을 홍보한다는 취지라는데 국민의 몇 %가 나라장터를 알겠는가”라며 “청와대에서 지시하니 사진만 찍는 전시행정이 돼선 곤란하다”고 일침을 놨다. 대전경찰청 관계자는 “MOU 체결 이후 다양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지만 조달청 관계자는 “아직 특별한 실적은 없다. 앞으로 함께 추진할 내용이 있으면 같이할 것”이라고 했다.

 MOU를 체결하고도 힘 싸움이 여전한 부처도 있다. 지난 4월 25일 최문기 미래부 장관과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정책 협력을 약속하는 MOU를 맺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초고화질 TV(UHD TV)를 놓고 미래부와 방통위가 이견을 노출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미국 출장을 갔다 왔더니 미래부에서 UHD TV 도입을 발표했는데 방통위와 미리 상의했어야 했다”며 미래부를 비판하는 일이 벌어졌다.

 ‘재탕 논란’을 빚을 수 있는 MOU도 여전하다. 지난 6월 미래부·환경부·해양수산부·기상청은 “부처 간 소통과 협력을 강화한다”며 정지궤도 복합위성 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2011년 8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환경부·국토해양부·교육과학기술부·기상청 공동으로 차세대 정지궤도 복합위성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자료로 밝혔다.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부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채병건·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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