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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KAL기 납북 귀환자 악몽 66일 체험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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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행이 함흥에서 끌려나가 평양에 도착한 것은 작년 12월 14일. 박명원씨 (36·여)의 팔목 시계는 낮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네들의 이른바 특별 열차 편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말이 특별이었지 굼벵이 가듯하여 만 11시간을 딱딱한 의자에서 흔들린 고행이었다. 그 뿐인가. 차창은 두꺼운 광목으로 가려져 있어 바깥을 내다 볼 수 없었고 승객 3명에 감시원 1명이 붙어 일거일동을 지켜보았다.

<일부는 함흥에 남아 고초>
평양으로 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 만큼 집에 빨리 돌아 갈 수 있는 길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대욱 (34) 금상조씨 (23) 등 일행 25명은 함흥에 그대로 남아 17일 동안 심한 고통을 겪어야했다. 먼저 평양에 도착한 사람들은 평양여관에 수용됐다. 성분조사와 함께 소위 학습이 시작되었다. 여관 4층 큼직한 방에 모아놓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게 일과였다. 주운섭씨는 밥 먹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모두 『위대한 김일성의 은혜』로 돌리는 수작에 졸다가 혼이 났다. 하루일과가 끝나면 으례 오락회와 독보회를 열어 잠자는 시간을 빼앗겼다.

<없던 시계 차고와 뺏겨>
주씨는 하기 싫다는 노래를 억지로 부르는데 목소리가 작다고 트집 잡힌 적도 있었다. 최원일씨(28)는 3인 1조가 되어 북괴 노동신문을 읽는 독보회 때 한 눈을 판다고 야단 맞았다. 감시원들은 처음엔 때에 절은 내복을 입었고 시계도 차지 않았으나 며칠 뒤부턴 어디서 구했는지 모두 시계를 차고 들어와 은근히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14-15세 가량의 소녀들까지 손목 시계를 채우고 검은 치마에 빨간색과 노란색 저고리를 입혀 승객들을 위안한답시고 호텔에 찾아오게 했다.
그러나 저고리가 접힌 자국이 그대로 나타나 날치기로 새 옷을 꺼내 입었다는 것이 나타나 속이 들여다보였다. 고향이 이북인 것을 숨기던 최씨는 20여 명이 번갈아 가며 신문하는 통에 견뎌 내느라고 진땀을 뺐다.

<차 왕래는 30분에 한 대 꼴>
김진규씨 (40)는 평양에 도착한지 사흘째부터 사상이 반동적이라고 얻어맞아 앞니 2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눈두덩이가 부어 고생했다.
12월1 9일의 일이다. 평소 소화불량 때문에 소화제를 복용해오던 주운섭씨는 계속된 긴장 때문에 거의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감시원에게 건강이 나빠 다고 했더니 『주을 온천 약수가 몸에 좋은데 가보겠느냐』고 넌지시 추근 거렸다. 그래서 주씨는 어찌하나 싶어 『정말 좋다면 한번 가보자』고 말했더니 그 감시원은 그 뒤로 두 번 다시 온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평양은 우리 나라 조그마한 읍만큼 한산해 보였다. 거리는 서울 거리의 1천 분의 1정도로 사람이 드물었고 차는 30분에 한 대 꼴로 뜸했다. 그러나 군용차가 대부분이었다. 상점에는 질 나쁜 과자 등이 보였다. 길가는 어린이들의 옷차림은 중국식 반코트형 유니폼을 입었고 신발은 다 떨어진 것이었다. 최고급 양복을 입었다는 게 한국에서 1950년대에 유행한 밀양복지와 비슷한 것이었다. 안내된 모범공장의 여직공이 입은 옷도 여름옷 차림이었다.

<어린이는 중국식 반코트>
남자들의 옷은 바지 폭이 하도 넓어 한복인지 양복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평양시가는 온통 김일성 포스터로 묻혀 있다시피 했고 허수아비를 그려놓고 코를 찢고 또는 팔을 땐 그림이 포스터에 『미국××××의 각(각인 듯)을 뜯자』는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글을 써 붙였다.
장영길씨 (24)는 평양서 가장 정신적인 고통을 받은 사람중의 한 사람이었다. 수용된 방이 밤에는 영하 7∼8도의 냉방이 되고, 대낮에는 37∼38도를 오르내려 미칠 것 같았다.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지 않는데 대한 보복이었다. 거기에다 한밤 중 잠을 청하여 가까스로 잠들까말까하면 우당탕! 소리내어 방문을 두들기며『안내원 있나?』하고 잠을 깨웠다.

<감시원 때리자 냉방감금>
맨 첫 조에 끼여 평양에 끌려간 편은 그래도 대우가 좋은 편이었다.
함흥에서 17일 동안 머무른 사람들은 기막힌 치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허대욱씨는 시비 끝에 감시원을 때려 냉방신세를 졌다. 밥을 먹을 때도 감시원이 지켜보고 있었다. 감시원의 복장 또한 남녀구별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작업복에 모자를 깊이 눌려 쓴 채여서 정하진씨 (63)는 엉뚱한 실수조차 빚기도 했다. 정씨는 어느 날 감시원이 보는 앞에서 잠옷을 갈아입다가 느닷없는 호통에 질 겁을 했다.
『여자 앞에서 그게 무슨 꼴이냐』고 앙칼지게 내뱉는 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감시원이 아닌가. 결국 우물쭈물 넘어갔지 만 북괴가 하는 짓은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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