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프라의 비참한 최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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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라고스4일AP동화】「비아프라」의 최종 붕괴와 「비아프라」지도자 「오주쿠」장군이 「울리」공항에서 국외로 탈출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수많은 「비아프라」군인이 참호 속에서 아사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한 처참한 목격담을 털어놓았다. 전화에 휩쓸렸던 「비아프라」에서 「라고스」에 온 수명의 신문편집자 및 방송기자들은 「비아프라」의 항복이 가까워질 무렵 식량은 바닥이 나 「비아프라」의 후방군인들에게는 격일 일식의 보급이 있었을 뿐이고 그나마 전선부대에는 아무 보급도 없었다고 말했다. 『식량이 여단 이하부대로 지급된 일이 결코 없었고 장교들이 식량을 빼돌려 자기 가족을 먹여 살렸으며 연방군이 단 한치의 진격을 하지 않았더라도 「비아프라」는 2주만에 함락되었을 것』이라고 전쟁이 발발하기 전 수개의 국제적 통신사의 기자로 일한 「비아프라」의 한 편집자는 말했다.
「비아프라」군의 고위 공보장교던 한사람은 「비아프라」군 제12사단이 작전 중이던 「아바」지구에선 인육을 도로변 시장에서 판 민간인 8명과 장교 2명이 「오주쿠」의 명령으로 처형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비아프라」방송기자를 지낸 그는 이 처형 광경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 기자는 『「이보」족의 일파인「구아」인들이 특공대를 조직해서 허약하고 비틀거리는 군인들을 노변에서 습격해서 산 군인을 20「파운드」(1백20「달려」)에, 죽은 군인을 5「파운드」(12「달러」)에 팔았다고 전했다.
참호 속에서 몸을 소총에 기대고 있던 병사에게 명령을 내려도 그 병사는 움직이지 않았으며 『내가가서 그 병사의 어깨를 치니 그는 푹 쓰러져 죽어있었다』고 그 기자는 도처에 아사자가 속출한 모습을 전했다.
이 언론인들은 인육이 매매되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인육을 살 때는 인육을 『「비아프라」육』이라고 불렀고 나중에는 『밀림육』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고 하면서 굶주린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먹었음을 시인했다. 이들이 전한 「비아프라」최후의 모습은 다음과 갈다. 「오주쿠」가 회담 차 떠난 후에도 「비아프라」에 남아있던 T6훈련기가 「비아프라」고관을 싣고 몇 차례나 「리브레빌」과 「상우토메」도를 내왕했다.
이로써「비아프라」의 최후는 처참한 가운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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