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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받침 아쉬운 번역사업|「노벨」상 추천 포기계기로「왕립아시아협회」토론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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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스웨덴」「아카데미」로부터 처음으로「노벨」문학상후보 작품추천 의뢰를 받은 한국 「펜·클럽」은 거듭된 논란 끝에『적당한 작품이 없다』는 이유로 추천을 포기하고 말았다. 『적당한 작품이 없다』는 것은 여러가지 뜻으로 해석되지만 아마도 이미 영역되어 있는 작품 가운데는 세계적인 수준에 육박할만한 작품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듯 싶다.
연전 일본작가「가와바다」(천단강성)씨가「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의 문학적 재능도 높이 평가되었지만 미국인 번역자「사이덴스티커」씨의 거의 완벽한 번역이 원작을 더욱 빛냈음은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번역 문학이 새삼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지난 28일 하오 8시부터 RAS(왕립「아시아」협회) 주최로「메디컬·센터」강당에서 열린 번역 문제에 대한 원탁토론은 국내 학자와 주한외국인 1백여명이 참석, 번역작업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문제들을 파헤쳐 주목을 끌었다.
송요인 교수(동국대) 사회로 열린 이날의 모임에서 첫 주제발표에 나선 주요섭 교수 (경희대) 는 한국 문학작품을 영역하는데 있어서 범하기 쉬운 오류를 예를들어 설명했다.
특히 고전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잘못이 저질러진다고 지적한 주교수는「처용가」, 김소월의『진달래꽃』, 최남선의『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세가지 경우의 영역을 예시하여 번역자가 원작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원작의 흐름이나 주제는 번역에 되살아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작의 깊이를 알고 번역에 착수하는 문제에 대해 김진만 교수 (고려대)는「초서」의『「캔터버리」이야기』를 번역한 자신의 경험을 들며 번역이란 작업이 힘든 것이야 재론할 여지가 없지만 외국작품의 한역보다는 한국 문학작품의 영역이 훨씬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역자의 자질 또한 문제가 되겠지만 번역은 모국어로의 번역이 보다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는 번역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에 있어서 최선의 방법은 『원작자와 번역자의 합동작업』이라고 말한 김교수는 원작자가 불가능하면 같은 나라의 번역자라도 참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앞서 주교수가 설명한 바 김소월의『진달래 꽃』의 경우『사뿐히』혹은『즈려』의 원 뜻을 역자가 이해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잘못이 완전히「커버」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번역자가 아무리 우수하고 원작에 충실하려는 마음가짐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번역사업의 중대성에 비춰 볼때 정부나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완벽한 번역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김교수와 「마셜·필」씨(하버드대)의 공통된 견해였다.
번역은 재창조(리크리에이션)며 번역자도 연기자와 마찬가지로 창조적 재능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필」씨는 번역자들이 천대받고 있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지만 특히 한국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은 번역에 있어서의 전문화된 기교 문제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으나 일반적인 문제들, 즉 역자의 자질, 역자의 사회적 위치, 번역전문가 양성 문제등에 있어서는 꽤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이 가운데도 특히 번역자도 하나의 예술가로서 양성되어야 하고 정부가 번역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이미 영역되어 있는 작품가운데 적당한 작품이 없어「노벨」상 후보추천을 못했다』는 변명아닌 변명을 들어야하는 우리 처지로서 볼 때 한번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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