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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벽지교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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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기여객선은 물론 어선마저 뱃길을 돌리는 수많은 낙도와 [버스]구경을 하려해도 수십 리씩 걸어나가야 하는 산골- 이른바 벽지 낙도에서 교사들은 [교육이전의 생활]에 고달프다고 했다. 교장은 교육보다는 도시에의 전근만 꿈꾸는 선생들의 유임설득에 매달린다. 벽지교육을 받아야하는 어린이는 전국에서 자그마치 45만명.
전남 화순군 도암면 봉하리 남국민교 김동호 분교장(50)은 방학도 잊고 4명의 교사를 모아 놓고『1년만 더 고생해 달라』고 유임설득에 안간힘을 썼다. 벽지 교사들은 1년내내 벽지교를 빠져나가려고 꿈꾸다가 겨울방학 때면 전출운동에 나서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김 교장은『교사들의 유임권유가 내 교육활동의 대부분』이라면서 벽지의 교육부재에 깊은 한숨을 지었다.
벽지교사의 현실도 일리는 있었다. 도암 남국민학교 정병채 교사(33)는 66년 광주조선대학을 나온 후 곧 완도의 벽지학교(을지)로 첫 발령장을 받았다. 1년후에는 진출시켜 주겠다는 도교육위의 약속을 믿고 부임했다. 그러나 2년반 후 정교사는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남국민교 분교장으로 전출발령을 받고 실망했다.
처음 부임했을 때 주민들이 그가 갖고 있는 5백원짜리 한장을 보더니 이리저리 돌려보며 신기해했다는 벽지속의 벽지였다. 1만8천7백50원의 봉급중 세금등을 빼면 겨우 1만6전3백원과 벽지수당 2천5백원이 손에 들어온다.
고향집에 5천원을 보내고 나머지로 국민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포함한 네 아이와 남동생등 7식구의 생계를 꾸려야 한다.
가족이 부근 산에서 연료를 마련하고, 기본 부식은 아내가 농사를 지어 장만한다. 두 아이의 학비는 면제라지만 교통관계로 도시보다 20%이상 비싼 쌀·보리등 양식값에 나머지 봉급이 부족한 실정. 대학때 즐겨 피던 백조 담배도 졸업후 첫 직업을 얻은 뒤 끊었고 졸업기념으로 맞추었던 구두가 바닥이 나자 줄곧 운동화로 살아왔다.『살려다보니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참고서적 한권 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는게 벽지교사 4년의 씁쓸한 결산. 이보다 낙도학교의 교사생활은 더욱 방치된 느낌.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풍도국민학교 이근식 교장(45)은 2만2백만원의 봉급으로 동두천 여중에 다니는 두 딸과 인천공고에 다니는 장남등 세 집 살림을 꾸리고 있다.
68년3월부임이래 동두천 집에 다녀오기는 네번 남짓, 설과 추석때 정도다. 한번씩 다녀오려면 쌀이 몇 말씩 없어지는 듯한 여비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길을 삼가게 된다고 중학이상의 세 자녀는 가정교사생활로 연필, [노트]값등을 충당하며 매달 적지 않은 적자가계를 아내의 뜨개질 등으로 잇고 있다.
69년말 대한교련 집계에 의하면 각급 학교교원의 월 평균 소득과 생계비 지출내용을 보면 국민학교는 1만2천1백원, 중학교는 8천5백40원, 고등학교는 7천8백30원씩의 적자생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4년 경력의 국민학교 교사가 받는 실수령 액은 1만3천9백30원.
비교적 생활이 안정된 도시의 경우, 치맛바람의 덕을 조금은 본다고 하지만 기성회비는 물론 교과서마저 무상으로 이름 그대로 완전의 무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도서벽지에서 교사의 생활은 더욱 심한 고생을 강요받게 된다. 몇 해전 경기도 부천군 덕적면 승봉국민학교장 이영주 선생(50)이 쌓이는 부채에 짓눌려 30여년간을 지켜온 교단을 떠나 가정교사로 직업을 전환(?)을 한 사실은 낙도벽지교사의 궁핍한 생활상을 드러내고 있다.
전국 8천9백60여명의 벽지낙도 교사중 2천5백62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전남의 경우, 58%가 연고지 아닌 객지에서『본인의 의사에 반한 근무』에 몸부림치고 있다.2∼5부 복식수업을 받고 있는 학교만도 4백70개교.
교사 1명이 1∼6학년까지 전과목을 가르치는등 글방선생으로서의 1인 5역에 벅찬 일을 떠맡다보니 자칫 자습이 잦고 미술시간에는 교사도 학생도 보지 못한 얄궂은 그림을 그리기 일쑤다. 그런데도 벽지교사에 대한 대우 조처는 67년초 도서벽지 교육진흥법의 시행으로 급지에 따라 최고 2천5백원(초년부터 1천원씩 인상)의 특수지 근무수당이 주어지고 있을 뿐이다. <정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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