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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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철학의 빈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정책가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5·16 이후「과잉 의욕」은 무슨 애교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바로 이것을 두고「철학의 빈곤」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철학 과잉」은 오히려「과잉 의욕」을 빚어 냈는지도 모르겠다. 이 경우의 철학은 열정과 혼돈되고 있다. [파스칼]의「광세」엔 이런말이 있다.
참된 웅변은 웅변을 경멸하며, 참된 도덕은 도덕을 경멸한다.…철학을 경멸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철학을 하는 것이다.』(8장)「경멸받는 철학」은 그「철학 과잉」과 같은 빈 껍질 철학, 단순 소박한 열정따위를 지적한 말일 것 같다.
「그리스」어로 철학을 [philo-sophia]라고 한다. 이 말은「지식 또는 지혜」(sophaia)라는 뜻과「사랑」(philos)이라는 뜻의 합성어이다. 고대「그리스」의 철학자「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을 안다고 뻐기는「소피스트」들에게『나는 오직 앎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도「필로소포스」라는 말을 썼다.
지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피곤을 모르는 정열- 이것이 철학의 집념이며 의지이다. 모든 학문의 시원이 이 철학의 빛에서 비롯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철학의 빈곤」이란 이성의 빈곤과도 통한다. 철학이 없는 정책이라 말할 때, 그것은 이성적이 아니라는 뜻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이「철학의 빈곤」현상은 최근 대학의「교양 과정」개편 방안에서도 엿보이고 있다. 현행의 교양필수 과목중에서 철학개론과 자연과학이 제외된 것은 이해하기 힘든다. 그 대신에 교련과 민주주의론이 등장한 것은「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교련은 「자주국방」을 몸소 고취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자주국방은 정신의 그것도 보다 중요하다. 민주주의론이 철학의 자리를 채우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민주주의는 한낱「론」으로 독립될 학문 분야는 아니다. 국민교육이, 그리고 고등교육이 온통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따로 이것을 독립학문으로 떼어놓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 교통질서가 문란하다고「교통 질서학」(?)을 교양필수로 넣을 수는 없지 않을까.
「철학 회복」이야말로 인간부재의 사회에 가장 절실한 과제이다.
「닉슨」대통령은 70년대의 여명을 밝히는 연두교서에서「공해」의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인간정신」의 회복을 강조한 것이다. 물질 문명의 개화속에서 유독 「철학」이 백안시 당하는 것은 우리에게 다만 견디기 어려운「인간 소외감」만 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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