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가는 미·소 사회|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융합은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사회주의냐 「브르좌」냐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다. 중간노선이란 있을 수 없다』고 「레닌」은 말했다. 「레닌」의 말이 옳은 것인가. 일부서방 정치학자는 물론 몇몇 소련학자들까지도 「레닌」의 소론에 반론을 펴면서 두 「이데올로기」의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통합론은 고도의 과학기술이 현대산업국가를 움직이는 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종국적으로는 융합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의 개인의 자유는 경제의 국가통제를 기틀로하는 사회주의와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융화는 전세계적인 경향이며 특히 미소 두 나라에서 급속히 일어날 것이다.
미소양국은 「마르크스」이론에 자본주의 요소를 가미하는데 앞장섰던 「유고슬라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회동해야된다고 통합론자들은 말하고있다. 극적인 것은 그같은 통합론이 「철의 장막」안에서 새어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68년 서방에 흘러나온 소련의 저명한 물리학자 「안드레이·사카로브」의 일만자에 달하는 논문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화해를 하는 것만이 세계평화의 유일한 길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물리학자 「표트르·카피사」는 작년가을 미국대학을 들러본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소련사람 전용「테이블」이란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미국사람 전용도 있을 수 없다. 서로 합석하는 것이 옮은 일이다』고 말했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소련학자의 발언은 소련사회에서의 지식인의 사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차대전때 소련의 사회학자 「니콜라이·팀마세프」나 「피티림·소로킨」등은 소련이 경제발전을 이룩할수록 점점 전제사회에서 민주사회로 이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늘날엔 「존·K·갤브레이드」나 화란의 「노벨」경제상 수상자 「잰·틴버겐」이 통합론에 열을 올리고있다. 「갤브레이드」는 그의 저서 「신산업국가」에서 『소련의 공업화는 지식의 갈증과 개인의 자유를 자극시킬 것이며 미국은 보다 계획적이며 집중적인 경제통어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고 썼다.
통합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①공업화는 도시화와 기술·조직의 평준화로 말미암은 동질문화를 빚어낸다. 예컨데 「인디애나」주의 「게리」에 있는 노동자나 소련의 「매그니톨스크」의 노동자나 똑같은 처자가 된다는 것이다. ②복합적인 산업사회는 이념의 틀을 약화시킨다. ③산업사회로 인한 풍요는 정치적 통솔과 이념적 획일주의를 배제한다. 아뭏든 미소의 사회는 1세기전에 비해 눈에띄게 닮아가고 있다.
미국은 경제면에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관료적 규율화와 복지사회지향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이는 얼마전만해도 생각조차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어떤 대기업들은 정부의 예속물이 아닌가 착각이 들만큼 자유기업정신을 흐리고 있다. 소련도 점점 소비자의욕을 채워주는 방향으로 5개년 계획을 짰다. 관리면에서의 창의를 크게 살려주는 정책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통합론에 대한 반론도 거세다. 경제변화가 사회발전의 결정요인은 못된다는 것이다 . 자유없이도 공업화는 이뤄졌다는 것-. 「루스벨트」아래 「디트로이트」의 공업이 일어나듯 「히틀러」체제 아래서도 「에센」의 공업지대로 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발전에 끼치는 전통·가치관·국민성 등의 역능을 통합론은 무시하고 있다는 것-. 미국의 「로크」(존)적 자유개념은 무한한 개인주의 사회를 하루아침에 변질시킬 수 없으며 「차르」로부터 「스탈린」그리고 오늘의 「크렘린」지도자들에 이르는 지도자상은 많이 변했다하더라도 아직도 국부형의 「리더쉽」이 국민적 「심벌」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경제형으로 본다면 자본주의사회에 보다 많은 계획과 통제가 도입되고 사회주의사회에 해빙의 기운이 돌긴 하지만 아직도 두 체제사이에 놓인 철학적인 꿈과 이상엔 건너지 못할 심연이 놓여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이상은 엇비슷하면서도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젊은 이들은 보다 긴밀한 인간유대를 바라면서 물질만능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하는반면 소련의 젊은 세대는 보다 자유로운 물질추구를 갈구하고 있다.
물론 공산주의 이론의 교조적정통성은 흔들리고있다. 또한 「브르좌」니 사회주의니하는 개념도 절대성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더욱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에 두 체제가 혼합할 가능성에 대한 대답은 「레닌」의 말이 옳을지 모른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떨어져서 발전할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다만 두 체제가 반드시 파국으로 격돌하리라는 걱정만은 가신듯하다. 미소가 존립을위한 최대의 현실책을 쓰는 점에서 미소의 이해는 조절될 것이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통합론보다는 그같은 현실론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타임」지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