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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그 아기는 어디 있다 왔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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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아연
재 호주 칼럼니스트

지난 2월, 한국 방문 중 조카의 결혼식이 있었다. 식이 끝난 후 친정어머니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운전사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도 결혼식장 앞에서 승객을 태운 것에서 자신의 처지가 연상되었던 것 같았다.

 10년 전 인공수정으로 쌍둥이를 얻었는데 최근에 아내가 자연임신을 했단다. 그 당시 부부 양쪽 다 불임 판정을 받았기에 시험관 시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덜컥 애가 생기니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앞선다고 했다. 택시 수입으로 네 식구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입이 또 하나 는다는 생각에 중년의 가장으로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가리늦게 아이를 키우려면 천생 아내가 일을 그만둬야 하니 그나마 수입은 줄고 가족들의 일상도 흐트러질 게 뻔해 이래저래 심란하다고 했다.

 “그래도 생명을 얻는 것이니 좋은 일 아니냐”고 넌지시 위로를 하니 “바로 그래서 아무 말 못하고 있다”며 이제껏 자제하고 있었다는 듯 곧 울분을 토할 기세다.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내 아이 목숨 가지고 화를 품는다는 게 사위스러워 기왕 벌어진 일, 좋게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달래고 있단다.

 그의 불신은 병원 측의 섣부른 불임 판정에 닿아 있었다. 그것도 실수로 그랬단 생각보다 인공수정으로 부당 수익을 올리려는 고의적인 의도였지 않나 싶어 미심쩍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사촌 형도 시험관 시술로 자녀를 얻은 후 다시 자연임신이 되어 최근에 아이를 또 낳게 되면서 의심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사촌 형은 이미 10대의 딸이 둘이나 있는데 그 나이에 원하지도 않았던 갓난아이로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또 다른 의미의 풍비박산이라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자신 주변에는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가진 경우가 꽤 된다고 했다. 그는 인공수정 후 뒤늦게 자연임신이 되는 일이 더러 있다는 것도 알고, 최근의 만혼 풍조와 스트레스·환경오염 등으로 회임하지 못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의사들이 돈 때문에 쉽사리 불임 선고를 내리고 인공수정을 부추기는 것 같은 의혹을 지울 수가 없다고 재차 말했다.

 아무리 열을 내봤자 물증 없는 심증일 뿐, 듣는 내 마음도 착잡하고 갑갑해졌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전문성을 악용한 의료인의 사악한 탐욕이 가정의 경제적 귀퉁이를 허물고 그도 모자라 보금자리 자체를 흔드는 ‘가정 범죄’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자연분만에 별다른 위험성이 없는데도 제왕절개를 하자거나, 최근에는 산부인과 질환 가운데 병원 측으로선 시술비도 더 받을 수 있고 수술도 간편해서 환부를 도려내는 대신 아예 자궁을 들어낸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생니를 뽑지 않을까 하는 치과에 대한 의심은 차라리 애교라 해야 할지. 하기야 치과도 요즘은 고가의 임플란트 시술을 부추긴다는 눈총을 받지만.

 의료적 상황을 환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환자들의 억측과 오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들의 불신이 워낙 커서 그런지 잘못됐다 싶으면 ‘대고마고’ 의심부터 하게 되니 딱한 노릇이다.

 그의 말의 진위를 떠나, 의료 부정 행위의 가타부타를 떠나 의료인을 비롯한 전문가 집단이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회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검사가 피의자를 성추행하고 고위 공직자, 종교 지도자, 언론 매체 등 사회 각계의 전문가 집단이 법과 제도를 악용하여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부패와 부도덕성은 지진과도 같이 사회를 송두리째 흔든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하며 살고 있지 않나.

 너나없이 돈을 너무 좋아하게 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기본, 원칙, 윤리, 양심 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시대 역행의 고리타분한 소리인진 모르지만, 전문가 집단의 부패는 사회적 재앙에 가깝고 결국 그들 스스로도 그 재앙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아연 재 호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