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저구마을 아침 편지] 텃밭을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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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마을 배수로 공사를 하느라 흙을 실어나가는 15톤짜리 트럭 기사에 부탁해서 유리 마당에 흙을 부려 놓았습니다. 집 앞으로 길이 나게 되면 손바닥만하던 텃밭마저 없어질 형편이라 시멘트로 발린 마당을 손질할 요량이었습니다. 아들을 시켜 마실 나간 아내를 불러왔습니다. 산처럼 쌓인 흙더미를 보고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러나 마당에 흙을 부어 텃밭을 만들고 화단을 만들자는 말에 아내는 이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제가 흙을 옮기고 돌을 골라내면 아내는 돌담을 쌓아 테두리를 쳤습니다. 어린 자식들은 흙더미 위에서 구르며 깔깔거리고 강아지까지 신이 났습니다. 그 모습에 흐르는 땀조차 단 웃음이 되었습니다.

얼추 밭 모양을 갖춰갈 즈음, 서쪽 하늘에서 석양이 내렸습니다. 풀처럼 꽃처럼 행복하게 살아갈 궁리에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남은 일은 내일 할 예정입니다. 며칠 후 텃밭과 화단이 완성되면 예쁜 이름을 붙여줄 겁니다. 그리고 봄볕 완연한 날, 가족과 어울려 행복의 씨앗을 뿌릴 겁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 나가는 것일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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