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에게 '감사와 존경' 전하다 DMZ 녹슨 철망 녹여 보은메달 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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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용사 추모(The Korean War Veterans Memorial)’라 적힌 보은 메달. 비무장지
대의 폐철조망으로 제작됐다(위). 미국이 발행한 정전 60주년 공식우표 3종(아래).

‘제철보국(製鐵報國·철을 만들어 국가에 기여한다)’. 한국 경제 발전의 주춧돌을 놓은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자주 쓰던 말이다. 지난 2011년 12월 13일, 향년 84세로 생을 마감한 박 명예회장은 생전 “철은 산업의 쌀이다. 품질 좋은 철을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게 곧 제철보국”이라고 강조해왔다.

1968년 4월 포항종합제철로 시작해 철강 자급시대를 연 포스코의 역사에는 6·25 전쟁 참전국과의 인연도 새겨져 있다.

 포항제철소 건립 초기, 공장부지만 겨우 확보해 놓은 박태준 회장은 당시 포스코 경영진과 함께 철광석이 풍부한 호주를 찾아갔다. 부지만 확보된 상태에서 원료 공급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지만 철강산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철광석 등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호주행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별지시도 한몫했다.

 당시 박 회장과 경영진은 호주 광산주들을 가까스로 설득해 지원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는데, 여기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군복’이었다. 6·25 참전국인 호주에서 6·25에 참전했던 포철 경영인들이 군 복무 시절 착용한 군복을 내보이자 제철소의 가능성을 의심했던 광산주들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산업의 쌀을 일구는 포스코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될 수 있었다.

 지난 2011년에도 참전국과의 애틋한 인연은 커다란 성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 콜롬비아의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이 6·25 참전국으로서의 인연을 각별히 강조하며 철광석과 석탄 등 자국의 광물자원 개발에 포스코가 참여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 그것이다. 콜롬비아는 남미 유일의 6·25전쟁 참전국이다.

 6·25 당시 군대 파견으로 희생을 안았던 에티오피아 정부에도 포스코의 손길은 닿았다. 포스코는 지난 2011년부터 경상북도가 펼치고 있는 에티오피아 새마을운동에 퇴직 임직원과 자녀들을 참여시키며 기업 차원의 보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포스코의 참전국에 대한 예우 표시는 ‘보은(報恩) 메달 제작’으로도 발현됐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국내외 6·25 참전 용사 및 가족들에게 전달되는 보은 메달은 포스코가 정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의 폐(廢)철조망을 녹여 만든 제품.

 평화와 분단을 상징하는 비무장지대의 잔해로 탄생한 메달 표면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The Korean War Veterans Memorial)’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지름 7㎝ 크기의 훈장과 4.5㎝ 크기의 타이스링 2가지 형태로 제작됐다.

메달 앞면에는 태극 문양과 유엔 및 참전국 국기가 새겨졌고 ‘DMZ 철조망으로 만들었다’는 내용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이 참전용사들에게 전하는 ‘감사와 존경(Thanks and Honor)’이라는 문구가 삽입됐다. 이렇게 제작된 보은메달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만6000여명의 유가족을 비롯, 참전 및 지원한 21개국 유엔군 참전용사와 한국군 참전용사 약 20만 명에게 전달되게 된다. 당초 10만개를 제작하려고 했으나 미국 등 각국 참전용사들의 요청이 계속돼 20만개로 제작 수량을 대폭 늘렸다는 게 포스코 측의 설명.

 한편 보은메달은 미국 정부의 공식 인증을 받으며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 21일 “오는 27일 워싱턴DC 한국전쟁기념공원에서 열리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식에서 비무장지대(DMZ) 보은메달을 참전용사들에게 전달할 정부 공식 기념 메달로 인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 국방부 주관으로 열리는 정전 60주년 기념식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을 비롯해 6·25 참전용사와 가족, 16개 참전국 주요 인사 등이 참석하게 된다. 미 국방부는 보은메달 제작을 주관한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과 우리민족교류협회 이강두 대표, 제작 지원에 힘쓴 포스코 정준양 회장 등 5명을 공식 초청했다.

 미국은 또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정부 차원에서 기념하는 공식 우표 3종을 발행한다고 밝혔다. 기념우표에는 보은메달과 6·25 참전 24개국 국기, 국민일보 정전 60주년 보도 사진 등이 배경으로 포함되게 된다.

  박지혜 객원기자 (ppar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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