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32개의 볼펜』|제주서 문제 빼내 공수…「볼펜」에 새겨|한 사람에 10만원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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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2개의「볼펜」을 팔기 시작하여 무려 8백여 만원을 거두어들인 사나이들』-행정직 및 체신기능직5급 공무원시험문제를 누설하여 검찰의 수사를 받고있는 총무처·체신부 관계직원들은「볼펜」에 문제의 답안을 새겨 응시자들에게 판 기상천외의 부정을 저지른 것이수사 결과 드러났다.
서울지검 고영준검사가 수사하고 있는 이 시험문제누설사건은 전기중학연합고시문제누설사건·의사시험부정사건 등 지금까지 있었던 각종 국가시험문제누설사건에 비해 그 범죄의 성질이 공무원치고는 너무나 조직적이었고 국가시험문제를 돈으로 거래했다는 점에서 그 예가 드물었다.
검찰이 이사건의 경보를 입수하기는 지난 9월 초순께. 여러차례 돈을 쓰고도 미처 합격 권에 들지 못한 한 응시자의 고발로 사건이 들통났다.
담당 서울지검 고영준검사는 10월 한달동안 이를 극비리에 내사 끝에 31일 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는「브로커」강기연(40)을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주범인 강은 고향인 이리를 중심으로 대부분 전북출신의 응시자를 모아 돈을 거두어내면 또 하나의 주범 김석준(40·전 서울체신청 인사계직원)이 시험관리를 맡고 있는 관계공무원을 매수, 문제지를 뽑아내어 정답을 만든 뒤 응시자들에게 알려주는 점조직 방법을 썼다. 이들은 심지어 누설을 위해 비행기편까지 이용, 정답문제를 나르기조차 했다. 제6회 5급 국가공무원시험문제누설의 한「케이스」를 보자.
제주도지구 시험파견관이 된 박재평(35·총무처 고시과직원 구속)은 전부터 지면이 있는김석준의 부탁을 받고 박덕환(35·총무처급여과직원)을 포섭, 시험문제운반의 묘안을 짰다.거리관계로 2, 3일 먼저 도착해야 하는 제주도시험장을 무대로 잡아, 박재평이 시험관으로 시험 2일전 KAL편으로 제주도에 갈 때 박덕준과 동행했다. 이들은 도청고시관계자들과 만나기도 전에 곧장 여관에 들러 봉인이 찍힌 문제꾸러미를 뜯고 두 장의 문제지를 빼낸 뒤미리 준비했던 위조 고무인으로 봉인을 찍었다. 그리고는 시험 바로 전날(제주도착 다음날)박덕준은 빼낸 두 장의 문제지를 품안에 넣고 곧 비행기편으로 되돌아 상경, 접선이 되어 있는 남궁병(32·고시과직원)에게 문제를 넘겼다. 남은 이 문제를 놓고 재빨리 정답을 작성,처음 4명의 응시자용으로 32개의「볼펜」에 바늘로 객관식문제의 정답인 번호를 새기는 작업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정답집『32개의 볼펜」은 시험감독과 안내역을 맡은임중혁(32·고속도로 사무소직원)에게 다시 넘겨져 임이 지정된 부정응시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임은 서울의 시험장소인 K고교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부정응시자들에게서「볼펜」을 빈틈없이 모두 회수하여 근처 개울에 버리는 등 증거인멸에도 치밀한 머리를 썼다.체신부 5급 기능직시험부정도 총무처의 5급 공무원시험부정사건과 마찬가지로『고양이에게찬 가게를 지키게 한 격』이 됐다.
이 시험의 문제 인쇄는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구치소에서 인쇄됐으나 감독 겸 교정담당관으로 파견된 차영순(33·체신부인사계직원)의「비상한 기억력」으로 문제가 새어나가게 됐다. 석사학위까지 갖고있는 차는 문제의 교정업무를 맡은 것을 이용, 교정을 하는체 하면서정답번호를 10여 개씩 왼 다음 화장실 가는 것처럼 어물거리며 밖에서 5과목 1백 문제의 정답표를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차는 이를 김석준·강기연의「루트」를 통해 응시자 14명에게 한 사람 앞에 10만원씩 받고 넘겼다. 경찰은 기능직시험에도「볼펜」에 정답을 새겨 시험장에 가지고 들어갔다는 강의 자백에 따라「볼펜」이「커닝·페이퍼」의 대역을 했음을밝혀낸 것이다.
이들 일당이 돈을 받고 응시자를 부정 합격시킨 수는 무려 50명, 미수에 그친 수만도 20명에 이르며 돈을 받아낸 액수는 모두 8백여 만원에 이른 것으로 검찰수사결과 드러났다.<심준섭기자>@@심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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