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의 봉준호 감독, 자본주의의 희망을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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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에서 보안설계자 남궁민수 역할을 맡은 송강호.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에서처럼 배우 고아성과 부녀 관계로 나온다. 고아성은 열차에서 태어난 소녀 요나를 연기한다. [사진 CJ E&M]

올해 한국영화 기대작 ‘설국열차’(8월 1일 개봉)가 22일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2006년 ‘괴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사진) 감독이 ‘마더’(2009)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제작비 4000만 달러(약 450억 원)가 투입된 대작, 크리스 에반스·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북미지역 배급권은 미국의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확보한 것을 비롯, 10분 분량의 하이라이트만으로 이미 167개국에 선판매됐다. 개봉 전에 제작비의 절반인 2000만 달러를 회수했다.

개봉도 하기 전 167개국에 선 판매

 그 동안의 큰 기대만큼이나 이 영화는 호불호가 엇갈릴 여지가 크다. 영화의 배경은 빙하기가 다시 찾아온 지구. 인류의 유일한 생존 공간인 열차는 1년에 한 바퀴씩 지구를 돌며 운행 중이다.

열차가 운행을 시작한 지 17년,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몰려있는 꼬리 칸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정신적 지주 길리엄(존 허트) 등이 그 중심이다. 이들은 열차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보안설계사 남궁민수(송강호)를 감옥칸에서 찾아내고, 남궁민수는 모종의 대가를 약속받고 딸 요나(고아성)와 함께 일행에 합류한다.

 구성은 단조로운 편이다. 열차라는 좁고 긴 공간, 그 중에도 엔진칸을 향해 앞으로만 질주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대신 극단적으로 공간이 나뉜 이 열차는 계급사회·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은유를 뚜렷이 드러낸다. 남루하고 비좁은 시설에서 양갱처럼 생긴 ‘단백질 블록’만을 먹으며 억압과 통제에 시달리는 꼬리 칸, 이와 달리 칸칸마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을 갖춘 풍요로운 앞쪽 칸은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씨는 “단순히 사회시스템과 혁명에 관한 은유를 넘어, 그 끝에서 어떤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지까지를 폭넓게 다룬 봉준호 감독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평했다.

영화평론가 강성률씨 역시 “통제사회, 계급구조 안에서 희망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는 연쇄살인범(살인의 추억), 진짜 범인(마더) 등 항상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봉 감독 영화의 세계관의 확장”이라며 “대중성을 갖췄다고 보긴 어렵지만 감독의 새로운 걸작이랄 수 있다”고 말했다.

꼬리칸·앞쪽칸 … 계급 사회 꼬집어

 인물들이 열차 앞쪽으로 계속해서 질주하면서 때로는 물리적 충돌도 일어난다. 여기서 발생하는 액션의 쾌감은 상업적 오락물로서 ‘설국열차’의 중요한 동력이다. 하지만 그 쾌감이 크지 않다는 데 아쉬움이 있다.

‘설국열차’의 액션은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대신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하는 비장하고 잔혹한 생존조건을 확인시킨다. 열차의 앞쪽으로 향할수록 별별 시설들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단순한 볼거리로만 사용된 인상이 짙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작가적 메시지와 블록버스터의 사이에서 길을 잃은 영화”라며 “폐쇄공간을 벗어나려는 인물들의 열망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이미지는 단순 나열에 가까우며 질주의 쾌감도 약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단조로운 구성, 액션의 쾌감 약해

 봉준호 감독은 22일 간담회에서 열차의 공간을 ‘노아의 방주’ 혹은 ‘타임캡슐’에 비유했다. 4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된 영화를 내놓은 소감을 “암덩어리가 몸에서 빠져나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뱀처럼 살아 움직이는 수백 개의 쇳덩이들,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인간들의 모습이 마음을 뒤흔들었다”며 “최후의 생존자들을 태운 열차에서조차 인간들은 칸과 칸으로 계급이 나뉘어 서로 평등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하려 했다”고 밝혔다. 상영 시간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이은선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전찬일·영화평론가) 예술과 상업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며 작가적 주제를 잘 표현한 수작.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임주리 기자) 설국열차는 이 세계의 흥미로운 복사판이다. 다만 기차 밖은 꽁꽁 언 빙하기라도, 기차 안의 인간들은 좀더 뜨겁게 얽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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