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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당구 업그레이드 … 세계선수권 열어요 장비도 알아주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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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임장영 구리시당구연맹 회장은 당구를 골프·테니스 못지않은 고급 사교 스포츠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계선수권대회 유치도 그 일환이다. [오종택 기자]

액션영화에 나오는 당구장은 폭력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다. 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한 곳에서 사내들은 짜장면을 시켜 먹고 욕설을 내뱉는다.

 요즘 당구장은 영화 속 장면과 거리가 멀다. 당구를 취미로 즐기는 동호인들이 늘어나면서 건전하고 고급스러운 당구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상호도 ‘당구장’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당구클럽’으로 바뀌고 있다. 아마추어용 당구대인 ‘중대’보다 큰 선수용 ‘대대’ 보급률이 높아지는 추세에서 당구가 생활 스포츠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금연 당구클럽도 전국에 100개가 넘는다. 2011년 전국체전 정식 종목에 채택된 이후 당구가 확 달라졌다.

 ◆월드컵 이어 세계선수권 유치=임장영(44) 구리시 당구연맹회장은 당구 고급화를 위해 뛰는 대표적 인물이다. 2014년 세계 3쿠션 당구선수권대회를 경기도 구리시가 유치하는 데 앞장섰다. 세계선수권대회가 국내에서 치러지는 건 처음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1969·1977년)에 이어 두 번째다. 임 회장은 “우승자가 나올 만한 전력을 갖춘 국가만 세계선수권대회를 유치할 수 있다. 이제 한국 선수들의 실력을 세계가 인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세계선수권대회 유치에 앞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경기도 수원시에서 열렸던 당구월드컵대회를 구리로 가져왔다. 오는 9월 열리는 구리 월드컵을 발판 삼아 내년 10월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겠다는 생각이다.

 임 회장은 “월드컵 기간 동안 당구뿐 아니라 문화 행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축제로 만들 생각이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구리농수산물공사·워커힐호텔 등이 이미 월드컵에 후원을 약속했다. 스폰서를 봐도 스포츠로서 당구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알 수 있다.

 ◆국산 당구 용품도 승승장구=한국 당구의 발전은 용품 산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구 큐 제작업체 한밭은 순수 국내 기술로 세계적인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밭은 김경률(33·서울당구연맹·세계랭킹 9위)의 이름을 따서 ‘김경률 큐’를 만들었다. 베트남 대표 선수들도 사용하는 제품이다. 그리스의 최강자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30·세계랭킹 11위)도 한밭이 만든 큐를 사용한다.

 당구공 제조업체 다이아몬드도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세계 당구공의 95%를 차지했던 벨기에 아라미스와 경쟁 중이다. 임 회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라미스사와 경쟁할 수 있는 업체가 바로 국내 기업 다이아몬드다. 아라미스사의 점유율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빌텍의 비바체 당구대도 오는 9월에 열리는 그리스 월드컵 공식 당구대로 지정됐다. 임 회장은 “국산 당구용품 업체들이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건 한국 당구가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국제대회를 통해 고급화가 이루어진다면 세계 무대를 휘어잡는 당구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TV 시청률은 프로농구보다 높아=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신고체육시설 5만5961곳 가운데 49.7%인 2만7855곳이 당구클럽이다. 전국에 약 21만 개의 당구대가 있고, 하루 평균 276만 명이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구 중계 TV 시청률이 웬만한 프로 스포츠 종목보다 높은 이유다.

 2012년 1월부터 6월까지 스포츠 채널 SBS ESPN을 통해 방영된 당구월드컵의 평균 시청률은 0.421%다. SBS ESPN이 2013년 1월부터 4월까지 중계한 프로농구 시청률(0.250%)보다 높다. 시청률이 나오기 어려운 오후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중계가 편성됐지만 당구 팬들은 꽤 높은 관심을 보였다. 중계방송을 통해 당구를 배우는 학습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내년 세계선수권대회도 TV 중계를 협의 중이다. 임 회장은 “남자들은 누구나 학창 시절에 당구 한 번쯤은 쳐봤을 것이다. 그만큼 잠재된 팬들도 많다. 대규모 국제대회는 당구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김환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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