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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 콤비의 8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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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이게 어찌된 노릇입니까. 특별히 배려해 부통령까지 만나게 해드렸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도 됩니까.”

 지난 4월 말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일본의 한 핵심인사는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의 수석보좌관 마이클 도닐런으로부터 맹렬한 항의를 들었다.

 사연은 이랬다. 같은 달 18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아소 다로 부총리는 바이든 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격이 맞지 않는다”며 거절하던 바이든 측은 막판에 아소가 총리 경험자란 점을 감안, 이례적으로 면담에 응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은 아소에게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한다.

 그러나 바이든의 피를 끓게 한 사건이 터졌다. 바이든과 면담을 마치자마자 귀국길에 오른 아소가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야스쿠니(靖國) 신사로 돌린 것이다. 바이든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졌다.

 바이든의 ‘격노’를 접한 일본의 핵심인사가 바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의 분노가 대단하다. 어찌 된 거냐.” 스가의 답변은 이랬다. “나도 몰랐다. 확인해보니 아베 총리에게는 사전에 귀띔했다고 한다.”

 아베는 아소의 야스쿠니 참배를 알고도 최측근인 스가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총리-부총리 사이라 하지만 아베는 아소에게 함부로 지시를 내리지 못한다. 양자 간에는 두 정치명문가의 미묘한 금도가 작동한다. 온건파인 스가 장관이 아소의 참배를 사전에 말리지 못하도록 ‘배려’한 셈이다.

 참의원 선거 이후 한·일 관계의 관전포인트는 8월 15일 전후의 야스쿠니 참배다. 경계대상은 물론 ‘AA콤비’라 불리는 아베와 아소다.

 아베에겐 미국의 압력이 거세다. 지난주 방일한 커트 캠벨 전 국무부 차관보, 마이클 그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일 정부 핵심인사들에게 “한국을 자극하지 말라”는 경고를 노골적으로, 연쇄적으로 했다고 한다. 더불어 올 가을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공식 방문도 물밑 추진 중이다. 오바마 방일 불과 한 달여 전에 야스쿠니에 간다는 건 아베로선 자폭과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아베의 발을 묶고 있는 셈이다.

 정작 뇌관은 아소다. 아베 본인은 안 가면서 아소의 참배를 방치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있다. 지난 4월의 재연이다. 게다가 아소는 남이 누르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성향을 보인다.

 그나마 긍정적인 데이터 하나. 아소가 처음 야스쿠니를 찾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날이다. 조약체결의 주인공이자 외할아버지인 요시다 시게루 당시 총리는 “오늘이 바로 일본이 독립한 날”이라며 아소를 조퇴까지 시키고 야스쿠니를 데려갔다. 이후 아소가 야스쿠니를 찾는 건 예외 없이 매년 이 무렵. 올해도 그랬다. 결과가 어찌되건 이래저래 ‘AA콤비’의 향배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불편한 8월이 될 듯하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