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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번 국민투표에 대한 국민의관심도는 과연 어느정도인지 궁금하다.
어느「르포르타지」기사에의하면 『야당후보는 누구요?』 했다는「고시프」도 있다.
우울한「코미디」가 아닐수 없다.
찬반은 그만두고, 우선 국민투표에 대한 이해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않다.
왜 무관심한가?
미국 심매학자 「라스웰」(예일대학법학교수)은그정치적 무관심의 유형을 셋으로 나누어 설명한 적이 있었다.
「정치적」·「무정치적」·「반정치적」-.
「라스웰」은 『그까질 내 한표로써 어찌 나의 거창한 기대와요구를 만족시켜 주랴!』 하는 태도를 「탈정치적」 이다고표현했다.
차라리 그럴바엔 정치적행동을 포기한다는 소극적인 형을두고한말이다.
「무정치적 무관심」은 국민의 관심이 엉뚱한데로 쏠리는 경우를 말한다.
「스포츠」나 과학이나 오악 등에 정신이팔려 정치야 거꾸로돌든 말든 관심없다는 태도.
「반정치적」태도는 그리 흔한 예는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신념에의해서 정치에는 마음을 쓰지않는다는 현저한 자기폐소주의자들이그렇다.
종교에 광적으로 빠져있는사람들과무정부주의자들이「반정치적」 파이다.
위정자의 입장에선 이들에게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된다.
독일정치학자 「노이만」의「무관심」분석도 흥미있다.
그는「정치소외」의 입장에서 그것을 설명한다.
첫째는 「절대 무관심」파.
정치는 오로지 파벌의 다툼이지,시민이 이러구 저러구 삿대질할만한 일이 못된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
따라서 그들은 시민이 아무리 발버둥질을 쳐도 「변화」는 없다는 신념 (?) 에 산다.
둘째는 「에피큐리안」 들-.
국가나정치는 질서나 유지해주고,개인은 그 질서속에서 자기속셈이나 차리면 된다는 쾌악파들이다.
다음엔 일종의 체념파가있다.
이 체제안에서 누가 무슨 야난을해도 별도리가 없다는, 그래서의식적으로 정치에서 멀리 띨어져 있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정치적 무관심」은 어느경우이든 정상은 아닌것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적어도 여론의 제도적인 뒷밤친을 「백본」」으로한다.
이들의 사이는 마치 바늘과실과의관계나다름없다.
그들의교직은 바로민주사회의제도를 유지하는 의상과도 같다.
여론이 정부를 지배할수있는 단계는 민주상식의 필연적인 발전「코스」 이다.
그것이 가능하면 여란은 민중의 의견으로서 언제나확인할수있는 단계가 보장되는 것이다.
한표의 이성적인판단과행사는 그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관심」 은 지금이라도 늦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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