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면 움직이고 쓸모·의미 따윈 없이 다만 아름다운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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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14면

1 노란 배경의 오브제(1936). 156.8x101.6x55.2cm

결국은 관심이다. 알렉산더 칼더(1898~1976)가 공대를 졸업하고 일을 하다가 다시 미대에 입학해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도, 그림을 그려도 꼭 움직이는 것만 그린 것도, 조각을 움직이게 만든 것도 모두 어릴 적부터 가졌던 움직임에 대한 일관된 관심에서 나왔다.

삼성미술관 리움 ‘알렉산더 칼더’전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시작된 ‘Calder 움직이는 조각 알렉산더 칼더’(7월 18일~10월 20일)전은 한 사람의 호기심이 어떻게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게 됐는지 그 관심의 족적에 대한 면밀한 트레킹이다.

처음 관객을 맞는 것은 칼더가 뉴욕 아트 스튜던트리그 재학 시절 그린 1920년대 회화작품 3점이다. 태현선 수석큐레이터는 “어떻게 그렸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그렸는지 보라”고 조언한다. 거친 붓질로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1920년대 미국의 이른바 ‘애시캔’ 화파의 스타일인 이 작품들은 일반적인 거리 풍경 대신 거대한 규모의 선박이나 테니스 경기장에 운집한 관중 등 ‘움직이는’ 사물에 내밀한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1월 31일(1950) 375x600cmr 3 서커스 장면(1929) 127x118.7x46cm

졸업 이후에는 동물원으로 출근하며 동물의 움직임을 하루 종일 관찰하고 섬세하게 묘사하기를 즐겼다. 수백 점의 드로잉을 모아 1926년 『동물 스케치하기』라는 책으로 만들었을 정도다. 앵무새원숭이낙타 등의 ‘결정적 순간’을 낚아채 붓과 먹으로 그려낸 작품들에서는 ‘생기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졸업 후 뉴욕에서 잠시 잡지 삽화가로 일했다. 당시 서커스 삽화를 그리기 위해 서커스 공연장을 자주 찾던 칼더는 곡예사와 동물들의 아찔한 몸놀림에 푹 빠져버린다. 26년 파리로 이주한 뒤에도 서커스를 즐기던 그는 철사를 이용해 서커스 단원들의 동작을 ‘예술적으로’ 구현하기에 이른다. 이름하여 ‘칼더 서커스’다.

철사 조각 ‘서커스 장면’(1929)을 보자. 맨 왼쪽 공중공예를 하는 두 단원의 몸매가 예사롭지 않다. 아래서 받쳐주는 사람은 우람한 남성의 몸체인데 그가 위로 들어올린 사람은 두 개의 철사로 단순화된, 간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이 대목에서 당시 파리를 휩쓸고 있던 추상예술을 칼더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철사 인형들을 움직이게 만든 이 ‘미니어처 서커스’는 파리 문화계에 칼더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마르셀 뒤샹, 호안 미로, 피터르 몬드리안, 장 아르프 등 미술계 리더들과 친분을 쌓게 된 것도 이 덕분이었다.

4 뒷다리로 선 종마(1928) 58x34x25cm 5 무제(1930) 91.8x73cm 6 거대한 속도(1:5 중간 모형,1969) 259.1x342.9x236.2cm

1930년 몬드리안의 작업실을 방문한 칼더는 그림과 똑같이 흰색 바탕에 빨강파랑 등 원색 사각형으로 장식된 스튜디오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추상회화를 시작한다. 당시 칼더는 몬드리안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사각형들이 움직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내 그림은 이미 너무 빠르다네.”

칼더는 하지만 이내 자신의 장기가 그림이 아닌 조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가는 철사와 작은 공들로 구성된 추상조각 ‘항해’와 ‘작은 페더스’를 개인전에서 처음 발표한다. 조각에 움직임을 부여하고자 하는 그의 일련의 노력들은 마르셀 뒤샹에 의해 ‘모빌’이라고 명명되기에 이른다.

전시장에서 상영 중인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모빌’에 대해 “용도도 없고 의미도 없다. 다만 아름다울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동감과 균형감을 꼽는다. 바람이 불면 움직여야 한다며.

이번 전시에는 움직이는 조각 ‘모빌’과 움직이지 않는 조각 ‘스태빌’, 각종 드로잉과 장신구 등 110여 점을 볼 수 있다. 전시장 마지막 코너 바람벽에 적힌 글귀는 칼더의 예술혼을 간명하게 설명한다. “모빌은 삶의 기쁨과 경이로움으로 춤추는 한 편의 시다.”

31일 오후 미술관 강당에서는 ‘추상조각과 칼더’(국민대 최태만 교수), ‘예술로 승화된 놀이 서커스 칼더’(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강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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