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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구직용 SNS ‘프로필 페이지’로 초대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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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28면

링크트인 창업자이자 회장인 리드 호프먼은 지난해 포브스가 뽑은 ‘최고의 기술창업 투자자’ 3위에 올랐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연결자(connected man)’로 불릴 만큼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이는 링크트인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블룸버그뉴스]

내가 몸담은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은 서울 역삼동에서 ‘D.CAMP’란 이름으로 국내 최초의 창업 생태계 허브를 운영한다. 매일 적게는 150여 명, 많게는 300~400명의 창업자와 투자자, 관계 기관 인사들이 드나든다. 해외 손님도 종종 찾는데, 개중엔 “누구누구 소개로 왔다”거나 “구글 검색으로 알게 됐다”며 불쑥 나타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명함을 받으면 우선 나는 세계 최대 비즈니스 특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링크트인(LinkedIn)’에 접속한다. 지금껏 만난 해외 인사 중 링크트인에 프로필 페이지가 개설돼 있지 않은 이는 거의 없었다.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⑫ 비즈니스 네트워크 ‘링크트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

지난주 초 이스라엘에서 날아온 유명 투자자 겸 컨설턴트 레비 샤피로도 자신을 소개하는 e메일에 링크트인 프로필 페이지 주소 한 줄을 떡 올려놓았다. 페이지에 접속해보니 과연 전·현직 커리어와 학력, 업무 영역, 관련 뉴스 등이 주르르 떴다. 그와 연결된 인사 가운데 나와 친분 있는 이도 몇 명 있었다. 자연히 대화는 이들의 안부로 시작됐다. 미팅 중 나는 그의 링크트인 연결 조직·인사 중 평소 네트워크를 갖고 싶었던 쪽을 언급했다. 샤피로는 흔쾌히 다리 역할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3년 새 주가 4배, 시가총액 23조원 육박
이렇듯 링크트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한 비즈니스 네트워크다. 세계 최강의 비즈니스 인명사전이기도 하다. 취업·채용과 인맥 관리·확장에 집중한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200개국에서 2억2500만 명이 사용한다. 각자는 자신의 커리어와 관련한 상세 이력서 수준의 프로필 페이지를 갖는다. 각 페이지는 직장, 학교, 업종, 전문분야 등 여러 카테고리로 연결된다. 북미 지역 채용의 40% 이상이 링크트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링크트인은 21세기 들어 등장한 각종 SNS 중 가장 뛰어난 경영 실적을 자랑한다. 회원 대상의 유료 서비스에 기반한, 명료하고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지난 1분기만 해도 지난해 동기보다 72%나 성장한 3억247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011년 5월 뉴욕증시 상장 이래 매번 그랬듯,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실적이다. 이에 힘입어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최근 3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한 IT기업’에 뽑혔다. 주가는 4배 이상 뛰었고 시장가치는 23조원에 육박한다. 비슷한 시기에 상장된 그루폰ㆍ징가ㆍ 페이스북 등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라 더욱 빛난다.

이 뛰어난 서비스를 창안한 이는 리드 호프먼(Reid Hoffman·46) 링크트인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다. 페이팔은 세계 최대 지불결제 서비스다. 2002년 회사를 이베이에 매각한 뒤 거부가 된 페이팔 멤버들은 대저택을 사는 대신 재창업과 재투자에 뛰어들었다. 유튜브ㆍ테슬라모터스ㆍ옐프ㆍY컴비네이터 등 수십 개, 수백조원 규모의 기업과 투자회사들이 탄생했다. 호프먼은 그중에서도 창업과 투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링크트인 창업뿐 아니라 페이스북ㆍ징가ㆍ플릭커 등 80여 개 기술기업에 일찍 투자한 덕택이다. 트렌드와 인재를 알아보는 ‘매의 눈’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그의 재산은 3조47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다른 체인지 메이커들과 마찬가지로, 호프먼 역시 최종 지향점은 돈이 아닌 듯하다.

호프먼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인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교 시절부터 인식론 등 철학적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인지공학 전공으로 스탠퍼드대를 우등 졸업한 뒤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그의 꿈은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고작 50, 60명 읽는 논문이나 쓰는 일’에 매력을 잃게 됐다. 그가 지난해 펴낸 저서 어떻게 나를 최고로 만드는가(원제:The Start-Up of You)에 따르면, 이 세상에 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일을 하고 싶어졌으며 기술과 경영이 바로 그 길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언제나 자신의 ‘차기 버전’에 투자하라”
비즈니스 쪽으로 방향을 튼 호프먼은 애플과 후지쓰에서 경력을 쌓은 뒤 1997년 첫 창업에 뛰어든다. ‘소셜넷’이라는 온라인 데이팅 회사였는데 트렌드를 7∼8년 앞서간 서비스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3년 만에 이 일을 그만둔 그는 페이팔에 합류한다.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티엘에 따르면 당시 호프먼은 페이팔의 급한 불을 끄는 ‘최고 소방 책임자’였다고 한다.

2002년 페이팔 매각 뒤 호프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링크트인을 창업한다. 이듬해 5월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실적은 미미했다. 첫 달 회원 수는 4500명에 불과했다. 페이스북도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여러 유혹에도 오직 ‘인맥관리’ 한 길만 파고듦으로써 독보적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다. 사전 검증되고 충성도 높은 양질의 회원, 추천 글을 통한 높은 신뢰성 확보 등이 성공의 관건이 됐다. 링크트인의 강점은 경기를 타지 않는 것이다. 실업률이 높을수록 구직자는 링크트인을 통한 자기 PR에 집중한다. 반대로 경기가 좋아지면 기업들은 더 나은 인재를 찾으려고 링크트인에 의존한다. 올 1분기 링크트인 매출의 절반가량은 각 기업이 지불한 채용 광고비였다.

이제 그는 20대 시절의 결심대로 전 세계에 심도 있는 방식으로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됐다. 시공(時空)의 제약을 뛰어넘는 저렴하고 혁신적인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창안한 결과다. 또 수많은 창업자의 롤 모델이자 멘토, 투자자가 됐다. 저소득층 학생의 대학 진학을 지원하는 ‘퀘스트브리지’ 이사이자, 모질라재단을 비롯한 각종 공익단체의 후원자 겸 운영자다.

이런 경험을 바탕 삼아 호프먼은 “‘나 자신’이란 스타트업을 경영하라”고 조언한다. 목표를 정해놓고 수십 년 매진하는 옛날 방식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시장 변화를 읽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합리적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기술과 인맥에 투자하고, 회사 밖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라. 게임의 새 규칙을 이해해야 한다. 언제나 자신의 ‘차기 버전’에 투자하고 ‘베타(시험 가동)’ 속에 살아야 한다.” 스타트업이 그렇듯 개인의 커리어 가치를 결정짓는 건 그 자신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과 주변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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