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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버스」여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럭저럭 벌써 10여년간을 방학때마다 민속답사를 한답시고 방방곡곡을 여행하다보니 열차나 배보다도 시골「버스」신세를 더많이진 셈이다. 포장되지않은 시골길을 터덜거리며 금시라도 분해되어 산산조각이 날것만같은 시골 「버스」는 다른 나라같으면 폐차처분하고도 남을 중고차들이 대부분이다. 신문지상에 차사고나 배사고가 났다고하면 대개 한번씩은 나도 다녀온 「코스」들이어서 그때마다 가슴이 섬뜩하다.
그러나 어느 귀하신분의 말씀이 우리나라 형편으로 시골길에 그러한 중고차라도 굴려 다니는 것은 과분한 일인줄로 알라고 하셨다. 하기야 온다던 차가 때로 아무예고도 없이 시간을 걸러 나타나지않으면 기다리다못해 어느구석진 마을에서 날이 저물고 하는수없이 어두운 주막에서 새우잠을 자는 수밖에 없다.
꿈에 그리던 동해안을 강릉에서 동래까지 근1주일을걸려 「버스」여행한 일이있다. 관동팔경의 지나는 곳마다 해안선의 절경은 이루다 형용할 수 없었으나 절벽위를 달릴때마다 용궁으로 직행하는가 싶었고, 그때 살아남은 것은 한국에서 제일간다는 강원도운전사아저씨와, 지나가는 마을마다 모시고있던 서낭님과 산신님의 덕분이 아닌가한다.
길가 아무데서나 마구 손을드는 아낙네들을 태우면 으레 5원이나 10원씩 차삯을 깎기마련이고 그럴 때 차장과의 시비는 꽤 오래끈다. 때로는 가진돈이 요것뿐이라고 속이다가 짓궂은 차장에게 도중하차를 당하면 고무신을 머리에이고 걸어가는 가난한 사람들-그런가하면 장터에서 거나하게 취한 사내들이 서로 낯모르는 중년부인들과 시비가 벌어지면 초만원「버스」속에서 주고받는 응수가 근30분은 계속된다. 팔도 인심도 가지가지다. 난생처음지나는 어느시골길에서 낯선사람들과 몸을맞대고, 터덜거리는 시골「버스」속에서, 그러나 나는 마냥 행복하다.
근래엔 민속답사도 꽤 근대화되어 「카메라」는 물론 녹음기휴대는 보통이고, 교통도 국내항공을 이용하는가하면 10여명씩, 조사단을 조직하고, 「버스」는 위험하다고 어지간한 거리는 「택지」로 달리는 수가 많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러한 조사방법에는 저항을 느낀다. 「노트」를들고 혼자서 「필드」에 들어가 현지인들과 손쉽게 친숙해지는 것이 최선의 민속조사방법이라고한 「레비·스트로스」같은 사람들의 말들 「올드·패션」이라고 웃어넘길순 없다.
가급적이면 혼자서 시골「버스」에 몸을싣고 처음 찾아가는 마을들에서 아직도 나는 무한한 기대와 행복감에 가슴이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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