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증세 없는 복지'의 자기최면에서 깨어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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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세청이 올 1~5월 세수(稅收)가 82조원에 그쳤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전년 동기(91조원)보다 9조원이 덜 걷혔다. 이대로 가면 상반기에 10조원, 연말까지 20조원가량 세수가 부족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하반기에는 세수 감소 폭이 줄어들 것”이라며 “(증세나 적자국채 발행 등) 특단의 조치도 필요 없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하반기에 느닷없이 초(超)호황이 찾아오지 않는 한 꿈같은 이야기다.

 세수 부족을 감지한 국세청은 전방위 세무조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더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은 최대 2조원 남짓하다. 결국 10조원이 넘는 세수 구멍을 메울 정책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뒤늦게 기획재정부는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는 ‘조세정책 기본계획’을 손질할 모양이다. 방향이야 맞다. 하지만 비과세·감면 혜택의 63%가 근로자·농업·중소기업에 집중돼 있는데, 과연 정치적 결단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요즘 청와대와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라는 최면에 사로잡힌 분위기다. 반면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복지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고 있다. 오히려 국민이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 셈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세입-세출의 간극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복지와 개발공약 같은 세출을 확 줄이는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면 정부 보유자산을 매각하거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비과세·감면을 줄이는 간접적인 증세나 세율을 올리는 직접 증세는 맨 마지막에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지금은 청와대와 경제팀의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다. 상반기에 덜 걷힌 법인세와 부가가치세가 하반기에 저절로 회복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할 조짐이고, 중국의 경기 하강속도도 예사롭지 않다. 이런데도 마냥 불확실한 경기 회복을 기다리는 것은 도박이다. 여기에다 세무조사 같은 전통적 수단으로 세수 부족을 메우기는 역부족이다. 청와대와 경제팀이 근거 없는 낙관론과 “증세 없는 복지도 가능하다”는 자기최면에서 깨어나야 한다.

 세수 부족을 메우려면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부터 조정하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 당장 시급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뒤로 미뤄야 한다. 지도자는 때론 스스로의 약속을 뒤집는 용기도 필요하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다음, 세입·세출을 백지상태에서 재검토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적자국채 발행과 증세까지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는 야당도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야당은 지난 총선·대선 때 훨씬 화끈한 복지공약을 내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복지 확대에 따른 세수 부족은 언젠가 닥칠 문제였다. 우리 모두가 풀어가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