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명상] 2. 내 이웃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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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는 도시 속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습니다. 늘 혼자 일해 왔기에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릴 때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천장이 높은 집안에서 작은 창문을 열고 세상을 구경하고 싶을 때 난 눈을 감고 빗소리를 내 안에 모아봅니다. 조금씩 무너져 가는 어둠을 보며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희망의 출구를 열고 달려가지만 거기엔 또 다른 아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아픔들을 사랑으로 일궈가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주체성 상실이 모든 삶에 회의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때는 창조적이지만 어떤 때는 잔인할 만큼 파괴적입니다.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을 가져야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낳게 되었고, 급기야는 정신질환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복잡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저마다 어느것 하나 정확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순간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존재의 결단을 보류한 채 거대한 시대의 물결에 죽은 듯이 떠밀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식을 가진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늘 새롭게 자신을 해석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신과 세계에 대해 명상하고 반성하면서 삶의 활력소를 얻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의미를 발견해 그 일에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요즘엔 어느것이 옳고 그런지를 한순간에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에 의하면 '사람은 그가 먹는 대로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만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은 그림입니다. 그리하여 공부하면서 얻은 것을 실천하고 해 저물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감사를 드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시골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께선 가는 곳마다 꽃길을 만드셨습니다. 이 시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아버지처럼 내가 잠시 머물렀던 곳에 꽃향기를 남기는 것입니다. 예술이 생명의 표현이면 내 기도는 이 시대의 눈물이기도 합니다. 절망을 통과하는 한 줄기 빛이 있다면 그건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준 신의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나눌 수 없을 만큼 비정한 인간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그건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로 세상에 왔는가를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 시대의 지성인들은 저마다 낮은 곳을 향해 가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를 팔아 남을 구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기의 것으로 승화시켜내야만 합니다. 내 이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진다 해도 나는 소박하고 꾸밈없이 사랑하며 봉사하면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길을 걸으려 합니다. 비속한 것들은 무엇이든 우선은 편안하긴 하지만 영원을 추하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1952년=서울 출생▶78년~92년=홍익대학교 미대 및 침례신학대학 졸업, 프랑스의 아카데미 그랑 드 쇼미에르 수학▶84년=미국 남침례교 소속 목사 안수▶95년=미국 풀러신학대학 선교학 박사▶84년 이후 각종 전시회 수익금을 소외된 이웃들에게 환원▶현재 프랑스 소재 크리스천 정신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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