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이후의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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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개헌안은 14일 새벽 변칙적인 방법으로 국회통과의 형식을 밟아 국민투표에 붙여지게 됐다. 야당은 이 개헌안의 국회통과를 인정치 않고 극한적인 무효화 투쟁을 선언했기 때문에 법률문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여야의 관계는「동결」상태에 빠져 장기적인 정국경화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개헌안의 변칙통과 국회는 당분간 마비될 것이다. 어차피 국민투표 뒤로 미루어질 새해 예산안심의가 순조롭지 못할 것은 고사하고라도 그 이전의 개헌찬반운동은 단순한 논쟁 이상의 험악한 대결이 불가피하다.
야당의 개헌무효화 주장으로 인해 개헌반대운동은 앞으로 통과저지뿐 아니라 투표거부 운동을 앞세운 이원투쟁의 성격을 띨 것이기 때문이다.
신민회는 국회법제8조2항이 휴회중에만 적용하는 규정이기 때문에 본회의개최 중에는 적용할 수 없으며 설사 본회의가 개회된 때라 해도 의원들에게 이를 통고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야당은 이제까지 보다 더 과격한 방향으로 유세를 몰고가 국민투표에 대비할 생각이다. 아마 9·14 변칙개헌을 또 하나의 무기로 삼아 최대한의 원외공세를 취할 것이 틀림없다.
국회의 심의나 표결은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의 표결무효화투쟁은 법정으로 옮겨지기 어려우며 단지 정치공세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 공세는 우선 국민투표를 목전에 두고 짜여지는 것이지만 무효주장의 강도 때문에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는 경우 그 이후까지 연장될 가능성이 많으며 어쩌면 70년의 정국과 7l년의 선거에까지 정치전면에 작용할지 모른다.
9·14 변칙표결과 그 무효화투쟁은 우선 신민당의 재건작업에 얼마간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이같은 정치굴곡은 으례 야당의 전열을 자극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책문제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개헌안의 9·14 국회통과를 합법으로 간주하는데 아무런 의문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이런 변칙적인 방법이 앞으로 실시될 국민투표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경계를 하고있다.
실상 신민회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한 상태에서 개헌안의 정상표결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법은 국회의장에게 경호권을 주었으나 24 파동 같은 것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공화당은 경호권 발동을 피한 것 같다.그렇다고 야간의 기습표결이 공명정대하지도 못한 것을-.
어쨌든 공화당은 개헌안처리에 무리를 무릅썼다. 이 무리가 국민들에게 준 인상을 어떤 수로 씻으러 들지 주목된다.
공화당은 이번 개헌안표결에서 서명의원에게 개헌에 반대하던 무소속의 김용태·박종태· 정태성 의원과 정우회 양찬우 의원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1백23명의 가표를 목표로 한 소위「123작전」은 김달수 의원 (무) 의 반대태도 고수로 결국 1표 미달의「122 전과」가 되었지만 공화당은 개헌선 (백14표) 을 8표나 넘겼다는 것을 대견스럽게 생각하고있다.
개헌에 소극적이던 약20명의 구주류의원과 비 서명의원4명 돌아선 것은 김종필씨의 집요한 설득이 크게 작용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개헌이 국회에서 부결되어 일어날 혼란을 원치 않았다고 했다. 아마 바로 이같은 이유로 공화당은 변칙처리를 불사했을 것이 틀림없다. 개헌의 목적에 비긴다면 그 수단이 받게 되는 비난은 감수해야 된다는 논리다.
또 개헌을 찬성키로 한 구주류 의원들 가운데는 『개헌안 부결에서 오는 혼란보다 박대통령의 정상체제를 연장시키면서 당내신풍운동을 벌이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자세인 것 같이 여겨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움직임이 어떻게 표출되고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단지 이와 관련하여 개헌표결에서 가표를 던진 무소속의원들에 대한 공화당의 복당은 곧 실현될 것이 확실하며 개헌안의 발의과정에서 거론 되어온 당 요직개편과 국민투표 뒤에 있을 원내간부개편 등에서 신풍운동의 진폭이 비쳐진다고 봐야한다. <심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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