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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단순 집행 아니다" … 가족에게 재산 분산 은닉, 해외·도피 여부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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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16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 연천군 허브빌리지를 압수수색했다.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 물품 중 하나인 불상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검찰은 이날 시공사 등 전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유입 혐의를 받고 있는 17곳을 압수수색 했다. [뉴스1]

“압수수색이 끝나면 경우에 따라 관련자들을 소환할 수 있다. 단서가 나오면 바로 관련 수사에 착수할 것이다. 이날 우리가 한 건 단순 집행이 아니라 수사를 위한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전담팀을 지휘하고 있는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16일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압수수색을 ‘수사’라고 못박았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을 보면 검찰의 타깃은 전 전 대통령을 넘어 그의 일가 전체를 겨누고 있다. 그만큼 광범위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아들 재국·재용씨, 딸 효선씨 등 직계가족은 물론 동생 경환씨와 처남 이창석씨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들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이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다.

 지난 12일 개정·실시된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9조 2항)은 “범인 외의 자가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불법 재산 및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에 대해 그 범인 외의 자를 상대로 집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이들의 재산이 전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것이 입증된다면 전 전 대통령의 직접 재산이 아니더라도 추징이 가능하다.

 이날 압수수색은 또 전 전 대통령 아들들에게 제기된 각종 혐의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이 이들에게 넘어간 여부와는 별개로 검찰이 이들이 소유한 사업체와 관련한 자료를 살피는 과정에서 수상한 돈 흐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아들들의 회사에 대한 금융거래 및 각종 자료를 살펴보다 장남 재국씨와 차남 재용씨의 사업체가 해외 돈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이 이들에 대해 품고 있는 혐의는 재산 국외 도피, 역외 탈세, 조세 포탈, 비자금 조성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장남 재국씨는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실이 확인됐다. 이 회사의 법인 계좌는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설립됐다. 회사가 세워진 건 2004년으로 당시 차남 재용씨에 대한 검찰의 조세포탈 수사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 문제가 불거진 시점이다. 검찰은 이런 사실 외에 국세청·금감원 등으로부터 제공받은 금융거래 내역 등을 검토한 결과 이들이 외환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범법 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에게서 넘어간 재산이 해외에 숨겨졌다가 세탁 과정을 거쳐 국내로 흘러들어온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와 함께 이날 압수수색 대상엔 포함되지 않았지만 3남인 재만씨의 관련 여부도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만씨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형 와이너리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검찰의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작업이 일가족의 비리 혐의에 대한 수사로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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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징금 전담팀이 매머드급으로 재편된 것도 검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를 방증하고 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지시로 출범한 추징금 전담팀은 당초 전담 검사 1명과 6~7명의 팀원으로 단출하게 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날부터 김형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이 전담팀을 실질적으로 지휘토록 했다. 김 부장은 최근 이명박정부 시절 해양경찰청 초계기 도입 과정에서의 리베이트 및 역외 탈세 의혹을 수사 중이다. 초계기 구입대금 중 수십억원이 해외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에 머물다 국내로 들어온 사실을 확인하고 대우인터내셔널 등 관련 업체를 압수수색해 리베이트와 역외 탈세에 관한 증거를 찾고 있다.

또 일부 재벌기업들의 조세피난처 등을 이용한 국외 재산 도피 및 역외 탈세에 관한 내사도 벌이고 있다.

 검찰은 또 전담팀에 90여 명의 수사관을 새로 합류시켰다. 여기에 기존에 팀장을 맡고 있던 김민형 검사 외에 3~4명의 검사를 더 파견할 것으로 전해졌다. 외사부장에게 전담팀 지휘를 맡긴 것은 전 전 대통령 아들들의 해외 재산도피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의 추징 과정으로 볼 때 전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고 버티는 전 전 대통령의 국내 은닉 재산을 아무리 뒤져봤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검찰이 이날 전격적으로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강제 수사에 돌입한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전직 대통령들의 추징금 환수에 과거 정부가 뭐했나”라고 질타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채동욱 검찰총장은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필요하면 압수수색이라도 해야 한다”며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검찰의 행동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검찰은 추징금 환수를 위한 전담팀을 꾸려놓고도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개정되기 전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9조 2항에 따르면 범인 외의 자에 대한 추징금 환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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