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 만한 공연] 스칼렛 핌퍼넬, 웃음 끊이지 않는 18세기판 히어로물 뮤지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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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은 화려한 무대와 의상으로 객석을 압도한다. ‘맨오브라만차’ ‘스팸어랏’ 등을 했던 데이비드 스완이 연출을 맡았다. [사진 CJ E&M]

겉은 어수룩한 데다 때론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데, 알고 보니 비범함이 넘쳐날 뿐더러 결정적 순간에 약한 자를 구해낸다. 히어로물의 전형적 설정이다.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Scarlet Pimpernel) 역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배경은 18세기 말이다. 주인공 퍼시는 화려한 영국 귀족 출신으로 패션과 시시껄렁한 농담 하기 바쁜 한량이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는 스칼렛 핌퍼넬이란 가명으로 비밀결사대를 조직, 당시 프랑스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 정권에 맞서 억울하게 갇힌 이들을 구해내는 영웅이다. 긴장감과 통쾌함, 짜릿함이 오간다. 대형 뮤지컬이 쏟아지는 올여름 유일한 신작이라는 점도 차별점이다.

 우선 눈이 즐겁다. 무대와 조명 등이 화려하다. 특히 의상은 귀족문화의 상징이라는 18세기 유럽 로코코 양식을 적절히 구현해냈다. 가면무도회 장면은 붉은 색과 황금색이 조화를 이루며 화려함의 정점을 보여준다. 국내 뮤지컬로는 드물게 의상 제작비로만 2억여원을 들였다는데,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심각하기보단 코믹함이 더 많다. 평상시 엉뚱함이 제대로 보여야 이면의 영웅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맡은 박건형과 한지상은 자신만의 애드리브로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원 작품은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2년가량 공연됐으니, 브로드웨이 공연치곤 성공도 실패도 아닌 보통의 성적표였다. ‘지킬앤하이드’ ‘몬테크리스토’로 국내에 두터운 팬층이 확보한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했다. ‘인투 더 파이어’(into the fire), ‘유 아 마이 홈’(you are my home) 등은 흡인력이 있다. 그래도 와일드혼의 명성을 입증할 만한 중독성 있는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여자 주인공 마그리트 역엔 김선영·바다가, 악역인 쇼블랑 역엔 양준모·에녹이 캐스팅됐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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