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커피산업 '곰팡이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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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앙아메리카를 덮친 커피녹병(coffe leaf rust)이 심상치 않다. 커피녹병은 곰팡이 포자가 커피 잎에 번식하면서 녹이 슨 듯 색이 변해 말라죽는 질병. 19세기 후반 스리랑카·인도네시아 일대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궤멸시키다시피 했다. 이후 커피 재배 주산지가 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 쪽으로 옮겨 가게 한 주범으로도 꼽힌다. 전염성이 빨라 커피농가의 ‘구제역’으로도 일컬어진다. 이 공포의 곰팡이균이 최근 과테말라·온두라스 등 중미 커피 생산국에 퍼진 뒤 확산 속도가 가파르다.

 영국 런던에 소재한 국제커피기구(ICO)는 최근 중미의 커피녹병이 1976년 이래 최악의 타격을 주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지역 커피 재배 면적의 절반 이상이 커피녹병 균에 감염돼 2012~2013년 생산량이 이전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줄 것으로 예상됐다. 엘살바도르는 전체 면적의 74%가 타격을 받았으며 과테말라(70%)·코스타리카(64%) 등도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중앙아메리카의 커피 공급량은 세계 10%에 불과하지만 질 좋은 커피로 유명하다. 특히 주 생산품종인 아라비카는 스타벅스·그린마운틴 등 글로벌 커피업체들의 주력 원두로 쓰인다. 전 세계 아라비카의 5분의 1이 중앙아메리카에서 난다. ICO는 커피 생산량의 감소로 이들 나라에서 올해 6억 달러(약 675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전체 커피값에는 큰 영향이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 이유로 전 세계 커피 생산 1위인 브라질의 이모작 작황이 어느 때보다 좋아 중미의 타격을 상쇄하고 있다고 15일 전했다. 오히려 아라비카 거래 가격은 이달 들어 최근 4년 동안 최저인 파운드(0.45㎏)당 1.17달러(약 1300원)로 떨어졌다. 2011년 5월 30년래 최고치였던 3.08달러에서 60%나 하락했다.

 문제는 이들 나라의 일자리 비상이다. 중미 4300만 인구 중 200만 명이 커피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FT는 커피녹병 확산 이후 2012~2013년에 걸쳐 약 40만 명이 실직했다고 보도했다.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이 미국 등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면서 지역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제커피협회의 로베리오 실바 회장은 “커피녹병은 커피를 넘어 경제적 질병”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커피녹병 확산이 기후변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본다. 최근 수년간 이 지역은 폭우와 이상 고온을 겪었다.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였던 고산지역까지 급속 확산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국제사회도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세계은행은 타격을 받은 농가에 저리 융자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콜롬비아 정부와 민간은 병충해에 강한 품종과 비료 등을 공급하는 데 14억 달러를 책정했다.

 한편 국내 인스턴트커피 시장점유율의 80%를 차지하는 동서식품 측은 “중미 생두 작황을 주의 깊게 보고 있지만 국내 커피 가격에 당장 영향이 있을 것 같진 않다”(홍보팀 최경태 과장)고 밝혔다. 2011년 기준 한국이 커피 생두를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베트남(33.4%)이며 브라질(20%)·콜롬비아(14.8%)가 뒤를 이었다. 생두를 로스팅한 원두 수입국은 미국(37.6%)·이탈리아(15.5%)·브라질(10.4%) 순이다. 한국의 생두·원두를 포함한 커피 수입은 7억1700만 달러(2011년)에 달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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