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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한계'를 넘은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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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달 언론에 보도된 뉴스다. 한 여성이 군부대로 면회를 하러 갔다. 면회소에서 그 부대 소속 군인이 자신을 면회 온 애인과 입맞춤하고 가슴에 얼굴을 묻는 장면을 목격했다. 화가 난 여성은 커플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군대 면회소에서 뭐 하는 짓이냐”는 글을 달아 페이스북에 올렸다. 동영상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부대 상관까지 보게 돼 결국 군인은 징계를 받을 처지에 몰렸다.

 사건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 군인의 애인이 반발해 동영상을 올린 여성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뒤늦게 동영상을 삭제했지만 정식 재판에 넘겨졌고, 판사는 벌금 3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명예훼손은 맞지만 반성하고 있고, 커플의 얼굴 정면이 보이지 않게 촬영한 정상을 참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군인에게 동정이 간다. 나이가 무려(!) 30세였기 때문이다. 서른 살짜리 군인을 면회 온 애인이라면 사실상 결혼 상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만일 그가 장교였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영외로 외출을 나가지 굳이 면회소에서 남 눈치 봐 가며 애정 표시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성(性)에 관해 가장 엄한 규칙을 적용받는 사람은 아마 사관학교 생도일 것이다. 미 육사는 20세기 초까지 생도들이 수염을 못 기르고 현금을 소지하지 못하며, 카드·체스, 흡연, 소설책, 악기 연주도 금기였다. ‘말·결혼·콧수염 금지(No horse, no wife, no mustache)’가 미 육사의 전통이라면 우리 육군사관학교에는 담배·술·결혼 금지라는 삼금(三禁) 규정이 있다.

 육사의 ‘생도생활 예규’는 총 137개 조항에 부록을 합쳐 93쪽이나 된다. 삼금 제도가 여기에 담겨 있고, ‘사관생도는 모든 시험을 감독관 없이 시행하여 고도의 명예심을 함양한다’(19조)는, 육사의 자랑거리인 ‘명예시험’ 조항도 눈에 띈다. 남녀 간 행동 시 주의 사항도 세세히 정해 놓았다. 성관계, 성희롱, 성추행, 남녀 간의 동침, 임신, 동거를 ‘도덕적 한계’로 간주해 ‘성군기 위반 행위로 강력하게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육사 4학년 생도가 이 도덕적 한계를 넘은 데다 스스로 ‘양심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퇴학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법원은 생도 편을 들어주었다. 양가 부모 양해하에 결혼을 전제로 주말 외박 때 동침했다면, ‘한계’를 넘은 것은 거꾸로 지나치게 경직된 규정 아닐까. 육사 측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길 권한다. 그런데 “생도가 여자친구와 주말에 원룸에 출입한다”고 육사에 제보했다는 이웃 아주머니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나마 동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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