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싸인'] 유머로 버무린 공포

중앙일보

입력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신작 '싸인(Signs)'에서도 여전히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현상들을 영화화한다.

1999년, 그는 2억9천4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블록버스터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를 통해 '죽은 사람들이 보여(I see dead people)'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듬 해인 2000년,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을 내놓았으나 식스센스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렇다 해도 9천5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두 영화 모두에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했다. 샤말란은 이번에는 멜 깁슨을 새로이 기용했고, 그 결과 공포와 새된 웃음 소리가 섞인 공포 영화를 만들어냈다.

깁슨은 감독교회 목사였으나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뒤 종교를 버리고 펜실베이니아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사는 그레엄 헤스를 연기한다. 호아킨 피닉스는 전직 프로야구 선수로 악마와 싸우는 남동생 메릴 역을 맡았다. 우애를 보여주는 메릴은 그레엄과 그의 아들 모건(로리 컬킨 분)과 딸 보(애비게일 브레슬린 분)와 함께 살고 있다. 네 식구로 이루어진 이 결손가정은 필라델피아의 교외(감독 샤말란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의 한 농장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살고 있었으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면서 그들의 삶은 산산 조각나게 된다.

그레엄의 딸은 한밤중에 그를 깨워 "내 방 밖에 괴물이 있어요. 물 좀 주세요"라고 말한다. 곧이어 그레엄과 메릴은 농장 밖 주변에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추적한다. 그러자 모건이 그들을 옥수수 밭으로 불러들인다. 모건은 그곳에서 놀랄 만한 것을 발견해낸다.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이 가족은 다 자란 자신의 옥수수 밭을 밀어버린 커다란 문양을 보게 된다.

현장에 도착한 지역 보안관 캐롤라인 파스키(토니상 수상자 체리 존스 분)가 그들에게 이런 문양은 몇 명의 남자들이 판자와 줄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이들 가족에게 일상 생활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라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대격변을 밀실 공포로 표현

이들 가족에게 생긴 일이 곧 세계 전역에서도 벌어지기 시작한다.

TV에 얼핏 얼핏 언급되는 뉴스를 통해 이들 가족은 이같은 문양들이 지구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이상한 광선 물질이 주요 도시 곳곳에 비춰지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지구가 침입당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세계의 전쟁'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답변에서 한참 벗어났다. 이 영화에서 전쟁은 고립된 지역에 살고 있는 작은 가족의 관점을 통해 보여진다. 샤말란 감독은 생존을 위해 압도적인 외계인의 힘에 맞서 싸우는 가족을 통해 전세계에 미치는 격변을 숨막힐 정도의 밀실 공포로 바꿔놓았다.

또한 그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일상에 대한 믿음을 쑤셔 대며 과연 삶이란 우연의 연속인가, 아니면 예정된 계획에 따른 것인가 질문을 제기한다.

샤말란 감독이 쓴 극본의 강점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실제 생활에서 그러하듯 등장 인물들의 과거나 동기 등을 서서히, 조금씩 조금씩 파악하게 된다. 게다가 샤말란 감독은 극의 긴장 상태가 극한에 달하면 관객에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는 동시에 등장 인물의 인간성에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천연덕스러운 유머를 사용하는데 이는 정말 탁월하다. 한 예로 깁슨과 두 아이들이 외계인에 대한 책을 읽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전체 출연진의 연기도 훌륭하다. 실제로 깁슨은 이제껏 보여줬던 자신의 기존 연기 스타일에서 벗어났고, 피닉스는 출연작에서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게다가 컬킨과 브레슬린도 탁월한 연기를 선보여 샤말란 감독은 영화계에서 어린 배우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 중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게 됐다.

이 영화가 테러분자들이 세계무역센터(WTC)와 국방성을 공격한지 이틀 후인 2001년 9월13일에 촬영에 들어갔다는 점도 언급해 둘 만하다. 9·11 테러가 아니었다면 이같은 고립된 상황 속에서의 숨막힘을 이처럼 강하게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느닷없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는 이 구상은 배우와 스탭들에게 강력한 감정적 코드로 작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물론 완벽치는 않다. 이 작품은 '패닉 룸(Panic Room·2001년작)'과 비교될 게 분명하고, 군대 모집 장교가 등장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싸인은 잘 만든 공상과학 스릴러물로 올 여름 개봉작 중 가장 돈 내고 볼 만한 영화다.

싸인은 8월2일 금요일 미 전국에서 개봉(국내 8월8일)하며 등급은 PG-13(국내 12세 이상), 상영 시간은 120분이다.

Paul Clinton (CNN)/ 이정애(JOINS)

◇ 원문보기 / 이 페이지와 관련한 문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