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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칸막이 제거 공염불로 끝나나 곳곳서 불협화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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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 부처 간 ‘칸막이 제거’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강조해온 핵심 사안이다. 당선인 자격으로 처음 주재한 인수위 전체회의(1월 7일)에서 그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부처 간에 서로 칸막이가 있어 효율성이 낮아지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느냐”며 관료사회에 ‘칸막이 제거’와 ‘협업’을 주문했다. 하지만 취임 5개월이 가까워오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다문화가정 정책이다.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관련 예산이 1000억원에 육박하고 있지만 관련 부처가 여러 곳으로 분산돼 있는 데다 부처이기주의가 겹쳐 중복 지원과 예산 사용의 비효율 문제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4일 “예를 들어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법무부는 외국인의 국내 정착을 지원하는 관점에서, 여성가족부는 다문화가정이라는 가정정책의 측면에서 지원을 해줘 예산이 중복되고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문화 전문인력 양성 사업은 각자 관할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법무부·여가부·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안전행정부 등 5개 부처 이상이 관여하고 있다. 총리실 산하에도 외국인정책위원회(법무부), 외국인력정책위원회(고용노동부),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여가부) 등이 분산 운영되고 있다.

 공항 입국장에 면세점을 설치하는 문제도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의 이해가 엇갈려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질질 끌고 있다. 국토부는 관광객 유치와 투자 활성화라는 기대 효과를 노리는 반면 기재부는 세수 감소와 형평성 문제를 들어 반대 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달 국회 대정부 질문에선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가 서로 반대 취지의 답변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정홍원 총리는 “상당히 수긍할 점이 많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관계 부처 간에 잘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현오석 부총리는 “국내 소비자의 경우는 세금을 내는데, 여행자는 세금을 내지 않고 사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있다”고 반대했다. 정부 관계자는 “두 부처의 입장이 상반돼 10년 넘게 끌어온 사안인데 이를 조율해야 할 컨트롤타워조차 서로 의견이 다른 모습을 그대로 노출한 결과가 됐다”고 꼬집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 중인 육상 풍력발전소 건설 사업 또한 부처 간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사업으로 꼽힌다. 특히 산업부는 환경부와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34년 만에 부활된 무역투자진흥회의 때(5월 1일) 14개의 풍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보고했다가 회의가 끝난 후 환경부의 반발에 부닥쳤다. 덜컥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가 환경부의 반대에 막혀 당초 14개에서 4개 건설로 후퇴한 상태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협업 분위기가 정부 내에 많이 퍼져 있다”면서도 “부처 간 갈등을 얼마나 빨리 해소하느냐가 중요한데 아직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2주에 한 번씩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고 각 부 차관이 참석하는 ‘협업 점검회의’를 열고는 있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분리·독립시키는 문제를 놓고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불협화음을 보였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따로 두는 걸 금감원이 반대해서다. 급기야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언론사 논설실장과의 오찬 간담회 때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독립기구로 만들겠다는 것은 대선 때부터 얘기를 해왔던 것”이라고 못 박았다. 전날 국무회의에선 주택취득세 인하를 놓고 갈등을 빚던 국토교통부와 안전행정부를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눈에 띄면 해결되고, 눈에 띄지 않으면 그냥 덮고 넘어가는 식의 협업은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부처 간의 갈등은 부처의 기능이 상반됐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고, 문제는 갈등 해결의 제도화”라며 “지금처럼 대통령이 일일이 나서는 게 아니라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국무조정실에 실질적인 권한과 예산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초에 협업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집권 중반기 이후에는 다시 원상복귀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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