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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하늘 지켜보며 절망에 사는 납북가족들|메아리 없는「기원19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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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월이 흐른다고 잊혀지는가. 25일은 6·25 열아홉돌. 이날만 오면 뼈를 깎는듯한 슬픔에 목이메어 북녘하늘을 우러러 그님의 안녕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8만4천5백32명의 납북인사가족들. 『억울하다』고 통곡해도 북녁하늘은 무표정. 19년동안 온갖고난과 싸워가며 오직 그님에게 자랑스럽게보일 그날을 위해 2세를 홀륭히 키운 슬픔의 여인들이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누가 얘기했습니까. 19년이란 적지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이가 붙잡혀가던 그 악몽의 일은 세월의 연륜이 더해갈수록 오히려 더 생생하게 가슴속에 살아나고 있읍니다. 이제 남은 소망은 단하나, 그이가 없는동안 고생끝에키워온 아이들을 그이를 만나 보이는 것입니다. 주위에서는 가끔 납북된 분들이 돌아가셨다는소식이 들려오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19년이 흐르는 동안 60세가 되었지만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이를 꼭 만나게될 것이라는….』
6·25그때 자유신문 편집국장이었다가 납북된 이정순씨 (초대공보국장)의 부인 이달남 여사(60·서울 종로구 안국동17의6)는 말을 맺지못하고 눈시울을 적셨다.
동란이 일어난지 10여일 뒤인 7월6일 마수를피해 친구집으로 숨으러갔던 이정순씨는 뒤쫓아온 괴뢰정치보위부원에 의해 반동분자로 몰려 북으로 끌려갔다. 한마디의 소식도 들은일이 없다는 부인 이여사는당시 중학교5학년이던 맏아들 용훈씨(37·한국일보기자)등 6남매를 이끌고 미군부대에서 빨래일을 하는등 잡일을 가리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뒤에는 대한 적십자사 서울지사 부녀과장등 여성단체일을 맡아보면서 자녀를 모두 대학교까지 마치게했다.
서울대 초대총장이던 이춘호씨의 부인 한정원여사(76)는 삯바느질로 7남매를양육, 현재 장남 배철씨(39)는 인하공대교수로, 차남 배성씨(33)는 원자력원 연구사로, 큰딸과 둘째딸은 출가했고, 딸셋은 미국에 유학하고있다.
한여사와 이달남여사는 작년에 각각 훌륭한어머니, 강한어머니로 표창받기까지했다. 역경을딛고 이겨 현재는 그때의 상처를 거의잊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이도 적지않지만 대부분의 납북인사가족들은 끼니를 걱정하고 자녀교육도 제대로 못시키는 실정.
전사자의 가족들은 확실한 사망통보 때문에 체념하기도쉽고 원호금·학자금보조등의 혜택을 받게되지만 생죽음한 것 같은 납북인사가족들에게는 아무런 따뜻한 손길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떤이는 「연좌제」라는 억울한 올가미 때문에 고통을 받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납북인사 가족들은 『돌아오리라는 희망보다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겠다는 것이 현재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56년5월 국제적십자사대표「월리암·H·미셀」 「유진·듀박」씨 등이 내한, 납북인사 송환을 위한 등록을 받기로 하고 그해 6월15일부터 8월15일까지 두달동안 7천34명의 명단을 작성, 국제적십자사에 전달했다. 다음해 인도 「뉴델리」 에서 열린 재19차 총회는 『한국동란중의 실향사민을 조속한 시일안에 그들의 부모형제 자매들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라』는「캐나다」안을 가결, 북괴에 독촉했으나 북괴는 이해 11월 안재홍·조소앙씨등 3백37명의 납북인사가 살아있다는 회답만을 보내왔을뿐 그이상의 성의는 보이지 않았다.
65년엔 납북인사송환을위한 1백만명 서명운동을 벌였으나 북괴의 냉담한반응으로 또한번의 희망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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