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관여 금지한 YS도 무차별 도청 … DJ 때 800명 물갈이 뒤 줄서기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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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전신은 1962년 5·16 직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창설한 중앙정보부(중정)다. 중정의 초대 부장은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당시 육군 중령)였다. 조직의 탄생 자체가 정권 수호와 뗄 수 없는 관계였던 셈이다. 중정은 5공 시절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됐지만 야당과 반정부 세력을 억압하는 강력한 통제기구로 작동했다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문민 대통령 시대를 연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안기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1994년 국회에 정보위가 신설돼 안기부에 대한 정치권의 감독이 시작됐고, 국정원법에 정치관여 금지조항이 신설됐다. 하지만 YS도 ‘정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안기부는 정보수집 실적을 올리기 위해 ‘미림’이란 도청팀을 부활해 정치 인 뿐 아니라 민간인 까지 무차별 도청을 실시했다.

 1997년 대선 때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은 김대중(DJ)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재미동포를 시켜 북한이 DJ에게 호의적이란 내용의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의 편지를 공개하는 ‘북풍(北風)’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권 전 부장은 정권이 바뀐 이듬해 기소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DJ정권은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내부 물갈이를 실시했다. 국정원 출신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이었던 이종찬 원장 시절 대구·경북 출신 500여 명을 비롯해 약 800여 명의 직원이 옷을 벗었다”고 말했다. 조직의 주류가 영남에서 호남으로 바뀐 것이다. 한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정권교체를 경험한 간부들 사이에선 앞으로 대선 때 이기는 후보 쪽에 끈을 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고 전했다.

 과거 중정으로부터 납치돼 죽을 고비를 넘겼던 DJ도 불법 감청의 유혹은 이기지 못했다. 국정원은 휴대전화를 도청하기 위해 33억원을 들여 감청장비를 개발한 뒤 2000년부터 2002년 사이 정치인·고위공무원 등 1800여 명의 통화 내용을 감청했다. 이 같은 사실은 2005년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이 터지면서 드러났으며, 임동원·신건 원장은 불법인 줄 알면서 도·감청 내용을 보고받고 첩보 수집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3년(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 대선 때도 국정원이 ‘이명박 TF’를 구성해 이 후보 주변의 인사들의 네거티브 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박근혜 후보와 관련해선 국정원에 보관돼 있던 ‘최태민 보고서’가 언론에 흘러나와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정권의 2인자’로 꼽혔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기존의 심리전단을 심리정보국으로 격상시켜 북한의 대남 사이버심리전에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이 정치 개입의 의혹을 살 수 있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달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정치개입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김정하·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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