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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밀주와 재즈의 시대, CSI 시작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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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CSI IN 모던타임스
데버러 블룸 지음
장세현 옮김, 어크로스
416쪽, 1만8000원

“노부부가 기이하게 살해되다.”

 1922년 미국. 뉴욕 타임스에 한 의문의 살인사건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노부부가 외출복 차림으로 욕실 바닥에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독살된 듯 보이지만,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고, 독이 든 약병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완벽한 ‘밀실살인’이었다.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콤비가 있었으니, 바로 뉴욕시 수석 검시관 찰스 노리스(1867~1935)와 법독성학자 알렉산더 게틀러(1883~1968)다.

저자 데버러 블룸은 실존인물인 노리스와 게틀러를 길잡이 삼아 1920년대 뉴욕의 살풍경을 소환한다. 갑작스런 호황에 도시는 환락과 부정으로 물들고, 때아닌 ‘금주법’으로 밀주업자와 폭력집단이 활개를 쳤던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 말이다.

재즈의 시대로 불리는 1920년대를 저자는 ‘과학수사의 탄생기’로 새롭게 명명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독살범들의 전성시대였다. 비소나 수은, 클로로포롬처럼 독성이 강한 화학약품이 약국에서 팔려나갈 때였고, 과학 발달로 새로운 독극물도 속속 등장했다. 특히 술 판매를 금지하면서 이른바 ‘야매’ 알코올인 밀주로 죽는 사람이 넘쳐났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미국의 유명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논픽션이지만 고전적 추리소설의 향내가 짙게 풍기도록 서술했다. 셜록 홈즈와 왓슨처럼 노리스와 게틀러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사건마다 반전이 있도록 구성했으며, 명콤비의 인간적 고뇌도 빼놓지 않았다. 문학적 필치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것도 특징이다. 예컨대 이런 묘사. ‘두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실험실 밖, 검게 드리운 저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독살범이 어둠을 기다리며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369쪽)

물론 과학책의 본분도 잊지 않는다. 독극물 9개에 대한 풍부한 상식은 11개의 살인사건 속에 절묘하게 녹아든다.

기실 무고한 이들의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찾아내 전기의자로 보내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부족한 인력과 장비,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부패한 관료에 맞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고 고민하는 콤비의 모습은 그래서 숭고하기까지 하다. 무정도시에도 정의는 피어나는 법이다.

참, 죽은 노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경찰은 사건 당일 같은 건물 지하실에서 ‘시안화물’로 소독했던 정황을 찾아낸다. 당시 시안화물은 소독약으로 많이 쓰였는데, 증류되면 치명적인 독가스로 변하는 약품이었다. 증기관을 통해 지하실에서 올라온 독가스가 부부를 죽인 것이다. 게틀러가 부부의 폐에서 이 독가스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 결정적 증거가 됐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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