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 없는 병원 첫발 … 숙제는 비용과 간호인력 확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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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보호자와 간병인이 상주하며 환자를 돌보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대만·중국밖에 없다. 고려대 의대 안형식(예방의학) 교수는 "선진국에서 간병은 간호서비스의 일부이지만 한국에선 환자와 가족 몫”이라고 말한다. 간호인력 부족과 허약한 건강보험 재정, 한국인의 효(孝) 문화 등의 이유가 얽혀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온 현상이다. 안 교수가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입원 환자의 19.3%가 간병인을 쓰고 34.6%가 가족이 간병한다. 간병비는 연 3조원, 입원 환자 1인당 275만원(2009년 기준)을 부담한다. 간병비는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 1인당 입원비(231만2000원)보다 많다. 돈도 돈이지만 보호자·간병인이 들락거리면서 병균을 감염시킬 위험이 있다.

간병인 들락거리며 병균 감염 가능성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도 간병을 간호서비스에 넣어서 간호사가 맡는 변화를 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방침을 확정하고 지난 1일 ‘보호자(간병인) 없는 병동’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어머님, 많이 드셔야 해요. 오늘 시술 받은 것 때문에 오른쪽 팔이 불편하실 수 있어요.”(간호사)

 “아이구, 이게 무슨 호강이랴. 선생님이 밥까지 챙겨주고.”(환자)

  2일 오후 6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 8층 81병동의 한 병실. 정후주(34·여) 간호사가 암환자 박종연(52·여·충남 당진)씨의 밥 숟가락에 생선을 올려주자 박씨가 당황한다. 박씨는 이날 항암치료를 위한 케모포트(주사를 위해 만든 혈관 연결) 시술을 받아 수저질이 쉽지 않자 정 간호사가 나선 것이다. 박씨는 식사보조 같은 일은 원래 가족이나 간병인이 하는 줄 알았는데 간호사가 직접 하니까 놀랍다는 표정이다. 박씨는 지난 5월 대장암 수술을 받았을 때 큰딸이 며칠 동안 24시간 내내 병원에 붙어 있었다. 박씨는 “맘이 너무 불편했다. 자기(딸)도 다섯 살짜리 쌍둥이를 키우느라 바쁠 텐데. 그렇다고 간병인을 쓰기엔 수십만원 하는 돈이 부담됐다”고 말했다.

 박씨가 입원한 병동은 보호자나 간병인을 둘 수 없다. 면회는 오전 10시~오후 8시로 제한되고 보호자가 병원에서 잘 수 없다. 간병인이 하던 일은 간호사가 한다. 이 병원 김인자 간호부장은 “간호사들이 투약·검사·처치·혈압체크 등의 고유 업무 외 식사·목욕·머리 감기 보조, 욕창관리 등의 일을 한다. 일부는 간호조무사가 보조한다”며 “간호사들이 30분 간격으로 환자를 체크한다”고 말했다. 박씨의 사위 양석진(46)씨는 “간호사들이 환자 상황을 잘 아니까 장모님께 뭐가 필요한지 바로 이해하잖아요. 안심이 돼요”라고 말했다.

“간호사가 환자 상황 잘 아니 안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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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병원은 86개 병상을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마련했다. 간호사 13명과 간호조무사 10명을 추가로 배치해 간호사 대 환자의 비율을 1대 6.4(다른 병동은 1대 14)로 낮췄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일산병원 외 인하대병원·세종병원 등 12개 병원이 참여했다. 이 사업에 드는 130억원은 정부가 대기 때문에 환자 추가 부담은 없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토대로 세부 방안을 마련해 이르면 2015년께부터 8년간에 걸쳐 ‘보호자 없는 병동’을 모든 병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의 모델은 일본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도 한때 한국과 사정이 같았으나 95년 간병인을 없애고 간호서비스(신 간호제도)로 바꿨다. 지난달 24일 낮 12시 일본 요코하마시 신도쓰카병원. 병동 중간 식당에서 30여 명의 환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상당수 환자는 휠체어에 앉은 채였다. 일부는 간호사가 옆에서 떠먹였다. 우에마쓰 쓰네코 간호부장은 “움직일 수 있는 환자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후 도쿄 시내 도쿄여대부속병원 8층 호흡기내과 병동을 찾았을 때 4인실에 보호자나 간병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병동 가운데 간호사실에서 10여 명의 간호사들만 환자 개인별 산소량·체온 등을 알려주는 모니터를 보는 등 바삐 움직일 뿐이었다.

건보 적용 … 환자부담 줄지만 건보료 올라

일본 요코하마시 신도쓰카병원의 한 병동 식당에서 환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신성식 선임기자]

 일본 병원처럼 가려면 ▶간호사가 제대로 배출돼야 하고 ▶추가 비용을 최소화하며 ▶5만 명이 넘는 간병인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간호대학 졸업생이 내년부터 늘고, 시간제 정규직이나 야간 전담 간호사 등을 신설하는 등 근무여건을 개선해 미활동 간호사를 끌어낼 방침”이라며 “간병 추가 비용에 건보를 적용해 환자 부담을 낮추고 새 서비스가 추가되는 만큼 건보료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간병인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유도해 이들을 요양병원의 보조인력이나 장기요양보험 수발인력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전문가 "의료 질 좋아져”=요코하마시 신도쓰카병원 우에마쓰 쓰네코 간호부장은 “가족들이 하루 종일 환자 곁에 있으면 돈도 못 벌게 된다. 신 간호제도 시행 후 병원이 환자에게 투입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국가적으로 만족도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도쿄여자의대부속병원 요시오 우에쓰카 교수는 “처음에는 ‘간호서비스로 바꾸면 병원이 돌아갈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막상 하고 보니 의료의 질이 올라가고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의 시각이 넓어졌다. 한국도 우리처럼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시오 교수는 “후생노동성과 재무성이 미리 논의해 다른 부분 지출(약값 등)을 줄이는 등의 대책을 세워 예산 부족 현상이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쿄 준텐도병원 노리코 데루누마 간호부장은 “환자 면회시간을 오후 2~8시로 제한한다. 가족이 환자와 함께있길 원하면 허가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도쿄=신성식 선임기자,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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