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중소기업에 연간 3500억원 일감 나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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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이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축소하고 해당 물량을 중소기업 등 외부 기업에 개방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은 3일 대기업의 내부 거래 비중이 높은 물류, 시스템 통합(SI), 광고, 건설 등 4개 부문에서 연간 3500억원 규모의 일감을 나눈다고 밝혔다. 부문별로는 물류 1550억원, SI 500억원, 광고 400억원, 건설 1050억원 등이다. 물류 분야에서는 롯데로지스틱스에 발주한 그룹 내 석유화학 계열사들의 국내외 물류 물량을 전액 경쟁 입찰로 전환하기로 했다. 광고 분야에서도 대표 계열사들의 광고·전단 제작을 계열사에 맡기지 않고 경쟁 입찰로 돌린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대홍기획이 맡아 온 롯데백화점 TV 광고와 롯데제과 자일리톨껌 등 일부 광고가 중소기업 등에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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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는 백화점의 전단 제작에도 경쟁 입찰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롯데정보통신이 맡아 오던 SI 분야에서는 기밀이나 보안 관련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일감은 모두 외부에 개방한다. 건설 부문에서도 소규모 공사의 경우 공개입찰로 전환할 계획이다.

 롯데그룹의 이번 조치는 국회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 즉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해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공정거래법의 개정에 따라 내년부터는 대기업 총수일가가 일정 지분 이상을 소유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간주돼 매출액의 최고 5%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내부 거래 축소가 중소기업에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외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에 개방하기로 한 분야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외부 개방 규모와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의 이번 결정으로 국내 5대 그룹이 모두 내부 일감 나누기 대열에 동참하게 됐다. 삼성은 지난달 금융계열사의 광고 제작을 공개입찰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감 문호 개방을 확대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4월 광고와 SI·건설·물류 분야에서 연간 4000억원 규모의 일감을 중소기업에 개방하기로 했다. SK도 광고 분야 경쟁 프레젠테이션 적용과 함께 내부 SI 거래 비중을 줄이고 있다. LG도 지난 5월 SI·광고·건설 분야에서 연 4000억원 규모의 일감 문호를 열었다.

 한편 신헌 롯데쇼핑 대표는 최근 직원들에게 “장기 저성장에 대비해 시스템을 리셋하는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3일 롯데쇼핑에 따르면 신 대표는 지난 1일 직원들에게 보낸 최고경영자(CEO) 메시지에서 “과거 위기들이 소나기였다면 지금의 위기는 장마”라며 “소나기는 처마 밑에서 잠시 피할 수 있지만 이제는 우산을 쓰고 비옷을 준비하여 걸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글로벌 경기침체와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소비시장은 계속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저성장 시대라는 심각한 도전을 극복하려면 고객 요구에 부합하는 업태를 적극적으로 연구개발하는 등 상품·서비스·마케팅 등 모든 분야에서 롯데백화점만의 차별화된 콘텐트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의 이 같은 언급은 최근 신동빈 롯데 회장이 저성장 기조에 맞춘 계열사들의 전략 마련을 독려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신 회장은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양적완화 출구전략이 거론되지만 아직 세계 경제가 풀려가는 것은 아니다”며 “신중하게 시장을 바라보면서 전략을 세우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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