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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극장가 활황, 그 열기를 이어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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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국내 영화 관객 수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올 상반기 영화관을 찾은 관객 수는 9850만 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나 늘어났다. 역대 최고치다. 그중 한국 영화 관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5.0%가 늘어난 5555만 명에 달한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일 발표한 수치다. 지난해 연간 전체 관객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다시 기록을 세우는 것도 아주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반가운 일이다. 특히 경제가 너나없이 어렵다는 마당이라 영화계의 이 같은 성적이 더욱 돋보인다.

 그런데 늘어난 건 관객만이 아니다. 각 극장이 특정 영화를 집중 상영하는 현상, 이른바 스크린 독과점도 심화됐다. 올봄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맨3’가 1300개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된 게 단적인 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스크린 수는 2000여 개다. ‘아이언맨3’의 스크린점유율이 60% 이상이란 얘기다. 최근 한국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역시 1300개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아이언맨3’는 미국에서도 흥행 성공을 거뒀다. 40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그런데 이는 미국 전체 스크린 수 약 4만 개의 10% 남짓이다. 한국만큼 쏠림 현상이 심하지 않다. 정윤철 영화감독(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부대표)은 이를 “양의 경쟁이 아니라 시간의 경쟁”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경우 상영 기간이 길어질수록 극장이 유리해지는 구조다. 예컨대 개봉 첫 주에는 전체 수입의 20%, 혹은 10%를 극장이 갖는다면 매주 그 비율이 점점 높아져 4주차쯤에는 50%에 이르는 식이다. 이른바 슬라이딩 방식이다. 극장들로서는 암만 대단한 흥행작이라도 처음부터 과도하게 스크린을 몰아줄 이유가 없는 셈이다.

 특정 영화에만 스크린이 몰리면 그 피해는 우선 관객들에게 돌아온다. 영화인들도 여러 해 공들여 만든 영화를 선보일 기회가 줄어든다. 만일 개봉 첫 주 스크린 수는 줄어도 상영 기간이 길어지면 전체 수입은 비슷해질 수 있다. 반면 관객은 극장에 동시에 걸려 있는 영화가 많아져 한결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다. 그동안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대책은 최대 스크린 수 제한 등 규제 위주로 논의돼 왔다. 영화진흥위원회 김영기 연구원은 “법적 규제로 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영화계의 자율적인 움직임과 극장에 집중된 수입원을 부가판권 시장, 해외시장으로 다원화하는 등 여러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의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스크린 독과점 대책, 아니 더 많은 잠재관객을 극장에 지속적으로 불러내는 유인책도 준비해야 한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