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꽃을 가꾸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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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집 작은 뜰 양지를 비집고 여린 꽃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새 봄볕을 믿고 서둘러 흙갈이를 해두었던 화분들을 다시 마루안으로 들여놓고 새움들이 돋는 뜰은 가마니로 덮어 단속해 주면서 나는 화초들도 나만큼이나 봄기운에 성급했구나 싶어 혼자 애석해하는데 이웃 친구가 찾아와서『당신은 언제나 화초때문에 야단이군』하며 놀려대고 간다.
아닌게아니라 나는 화초 때문에 이 겨울동안 숱한 고생을 겪었다. 좁은 고처는 화분들이 온통 차지해버리고 심지어 책상 위까지도 난초분들이 올라앉아 글을 쓰는데도 방바닥에 엎드려 쓸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으며 화초를 둔 마루에 난로를 피우기위해 내가 거처하는 온돌에 연탄을 아껴쓰지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경제적 곤경을 겪으면서도 그것들을 거두고 있는 것은 화초들에게서 내가 받는 그 아름다운 환희 때문이다?
철되면 저마다 모양과 색채를 달리해서 향기롭게 개화하는 그 성실! 많이 사랑해 주면 많이 곱게 피는 그 정직한 미의 보답! 인간살이의 배신과 불성실에서 다친 마음을 나는 언제나 화초들에서 달랠 수 있었고, 아무리 허술한 거처일지라도 몇 포기 철따라 꽃을 피워두면 아늑하고 맑은 분위기속에 스스로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5일은 식목일이라 해서 여류문학회에서는 광화문거리에다 꽃을 심었다. 여성다운 착안이었구나 싶어 마음 흐뭇하다.
고급주택에다 어마어마한 정원을 차려 살면서도 대문밖이나 골목엔 꽃 한포기 심지 않은 이 메마름 속을 그래도 여성단체가 물기를 대주려 나선 마음성은 옷치장이나 화장보다도 경지 높은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광화문 거리도 거리거니와 보다 변두리 판잣집지저분한 울타리 밑이나 자기 집 주변을 먼저 손질하고 나팔꽃담쟁이 같은 푸른 줄기를 올려주고 수세미를 심어 화장수라도 받아쓰게 가꾸어 주는 것이 한결 곱고 밈음직한 모성애를 겸한 정이 아니겠는가?
아뭏든 이날을 계기해서 여성들은 그 흔한 단체를 동원해 우리국토의 구석구석에 꽃을 심어 가꾸는 정서를 실행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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