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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탈출에 승부수 … 1조원 더 풀어 기업투자 활성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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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현 부총리는 “하반기 3%, 연간 2.7% 성장을 달성하고 내년에는 4%대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왼쪽부터)이 배석했다. [뉴시스]

‘천무삼일청(天無三日晴)’.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한국 경제의 처지를 표현한 말이다. 사흘간 계속 좋은 날씨가 없다는 뜻이다. 수출을 빼면 어디를 둘러봐도 좋은 구석이 없는 한국 경제의 위기상황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기재부가 내놓은 올해 2.7%, 내년 4% 성장률 전망치는 2%에 그친 지난해와 비교하면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 2.7%는 아직 달성되지 않은 희망사항이다. 대내외 경제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보다 낮아질 수도 있다. 이번 경제정책 방향을 마련한 기재부 경제정책국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만큼은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절박성이 담긴 수치”라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이유다.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대외 경제 변수다. 지난 20일 미국의 양적완화(QE) 축소 가능성 제기와 중국의 신용경색에 대한 우려는 즉각 국내 자본시장을 흔들었다. 증시가 요동을 치고 환율과 금리를 급등시켰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실물경제에서 대외의존도가 높고 자본시장도 완전히 개방된 한국 경제는 대외 여건이 조금만 불안해도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올해 2.7% 성장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라는 게 민간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올해 성장률을 2.9%에서 2.3%로 오히려 낮췄다. 이 연구원의 변양규 거시정책연구실장은 “기재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효과로 전망치가 당초 2.3%에서 0.4%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대외 여건 개선 속도가 느려 우리 연구원에서는 그 효과가 0.1%포인트에 그칠 것으로 봤다”고 전했다. 반면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추경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재부가 성장률을 2.7%로 전망한 것은 최소한 이만큼도 안 되면 자칫 저성장의 수렁에 깊숙이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올 하반기를 중대한 시기로 보는 이유는 이번에 저성장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성장동력이 크게 훼손된 태국 꼴이 난다는 이유에서다. 최상목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 추세가 1991년 경제위기 이후 완만한 회복세를 보인 스웨덴형으로 가다가, 유럽 재정위기 이후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성장 속도가 뚝 떨어진 태국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웨덴형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잠재성장률을 넘어서는 분기별 1% 이상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최근 한국 경제는 성장동력이 크게 둔화됐다. 내수둔화와 경기침체로 4월까지 걷힌 세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조8000억원 적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수에 펑크가 나면) 국채 발행, 정부 자산 매각, 증세를 통해 세수를 메워야 하는데 어느 하나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주택시장은 거래절벽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취득세 한시 감면 혜택이 이달 말 종료되는 탓이다. 이같이 활력을 잃으면서 한국 경제는 2011년 4~6월부터 8분기 연속 전기 대비 0%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올 2분기도 이런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 부총리가 이날 “저성장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관건은 이런 의지를 어떻게 현실화하느냐다. 온기운 숭실대 교수는 “온갖 경기회복 노력에도 2%대 성장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자칫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지속될 수 있다”며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기업 투자심리를 회복하는 게 저성장 탈출의 핵심카드”라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돌파구는 기업투자 활성화뿐이라고 보고 올 하반기에는 저성장 탈출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하반기 8대 핵심과제를 내놓았지만 경제를 살릴 뾰족한 카드는 보이지 않는다. 굳이 약발이 있을 만한 대책을 꼽는다면 발전시설·사회간접자본(SOC)에 1조원 규모의 공공기관·민간 투자를 늘리는 재정확대 정책 정도다. 기재부는 이를 통해 3분기부터 분기별 성장률을 1%대로 회복하고 하반기에는 성장률 3%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김정관 기재부 종합정책과장은 “이렇게만 되면 연간으로는 2.7%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재부는 이 과정에서 걸림돌로 예상되는 경제민주화 과잉입법에도 제동을 걸기로 했다. 현 부총리는 “정책 목표가 아무리 바람직하더라도 추진 과정에서 기업의 위축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며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가운데 과도하게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정거래위원회와 세정당국은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의욕을 꺾는 사례가 없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런 기조에 맞춰 성장 추세가 약화되고 있는 제조업을 대체할 신성장동력으로 서비스산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달 1일 발표한 규제 개선 중심의 1단계 투자활성화 대책에 이어 다음 달 중 2단계 투자활성화 대책을 꺼내 놓을 예정이다.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소재부품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지원을 위해 10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PEF) 조성에 나서고 신성장동력인 환경산업 발전을 위해 글로벌 환경전문기업 100개사 육성에도 나선다.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분양가 상한제를 신축적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현재는 모든 주택에 대해 법률로 적용 대상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시장 상황과 지역별 수급 여건에 따라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지정 대상은 보금자리주택과 보금자리주택지구 내 민영주택, 주택 가격이 급등하는 지역의 주택이다.

세종=김동호·최준호 기자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분양가를 정할 때 땅값과 표준 건축비를 더한 금액을 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제도.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 집값 안정과 투기 억제를 명분으로 도입했다. 현 정부는 이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주택법 개정안은 원칙적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되 투기가 우려되는 지역에 한해 신축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완강한 반대로 6월 임시국회에서 분양가 상한제 폐지 법안은 정식 회의 의제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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