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이 쏟아내는 속사포 독설 … 이런 뮤지컬 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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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뮤지컬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는 “‘애비뉴Q’는 가장 신선하고 독창적인 뮤지컬”이라고 극찬했다. ‘애비뉴Q’는 동성애·포르노 중독·인종 차별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유쾌하게 풍자한다. [사진 설앤컴퍼니]

‘애비뉴Q’(Avenue Q)는 괴이한 뮤지컬이다. 인형이 주인공인데 정작 어린이 관람불가(만 15세 이상 관람가)다. ‘오늘 속옷을 입지 않았어(I’m not wearing underwear today)’ 같은 망측한 노래가 툭하면 나온다. 포르노·인종차별·동성애 등 민감한 소재도 잘근잘근 씹어댄다.

 근데 이 요상한 뮤지컬에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문법을 송두리째 흔들었다”란 평가다. 2004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21세기 넘버원 흥행 뮤지컬인 ‘위키드’에 KO 펀치를 날리며 작품상·극본상·음악상 등을 휩쓸었다. 2003년 초연 이후 10년간 화제의 중심에 섰던 ‘애비뉴Q’가 8월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상팔자 인형=‘애비뉴Q’엔 인형이 나오는데 사람도 함께 나온다. 배우가 등장해 ‘퍼펫’(puppet)이라 불리는 인형을 손에 끼고서 연기한다. 작품의 핵심은 이 지점이다.

 배우가 뻔히 나와 인형을 조종하고 노래하고 연기하는데, 정작 배우보단 인형이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출연진은 인형 조종술 이외에 시선·표정·호흡 등에 있어서 독특한 훈련을 받는다. “인형과 배우의 일체감이 가장 중요하다”(배우 니컬러스 던컨)고 한다.

 모티브는 인기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다. 미국 아이들이 즐겨 보는 ‘세서미 스트리트’ 캐릭터들이 어른이 돼선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무대화했다. 우리로 따지자면 ‘모여라 꿈동산’의 성인 버전 뮤지컬이라고 해야 할까.

 인형을 앞세운 또 다른 이유는 가상성(假象性)이다. 뮤지컬엔 듣기에 꽤 민망하거나, 정치적으로 예민한 대화가 적지 않다. 실제 사람이 했다면 다소 거북했을 법한데 인형이 쏟아내기에 한 수 접고 바라보게 된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씨는 “조선시대 탈 쓴 광대들이 양반계급을 비판·풍자했던 가면극의 효과를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인형의 처우(?)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인형 하나 만드는 데 120시간 이상 소요된다. 개당 제작비가 1만 달러(약 1150만원)를 넘는다. 인형은 적당한 온도·습도 유지를 위해 최신식 에어컨을 장착한 특별공간에 보관된다. 해외 공연 때는 인형의 머리털과 의상 관리만을 전담하는 인력이 따로 배치될 정도다. 심지어 청결제로 손을 씻어야만 인형을 만질 수 있다고 한다.

 ◆돌직구 입담=‘애비뉴Q’란 뉴욕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허름한 달동네 같은 가상 공간이다.

등장 인물은 생생하다. 프린스턴은 직장을 못 구한 청년 백수이며, 니키는 ‘원 달러 플리즈’를 입에 달고 사는 빈털털이다. ‘원 나잇 스탠드’만 외치는 음탕한 클럽가수 루시, 음란물의 달인 트레키 몬스터, 게이임을 숨기고 사는 월스트리트맨 로드도 나온다.

 대사와 노래는 직설화법의 총합이다. ‘엿 같은 내 인생’(It sucks to be Me)으로 극 초반을 달구자, 트레키 몬스터는 “야동을 볼 때는 인터넷이 최고”(the Internet is for Porn)라고 노래한다. 동요 같은 멜로디에 ‘모두가 조금씩은 인종차별주의자’(Everyone’s a little bit Racist)를 시치미 뚝 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미국 공연에선 “비록 힘들지만 지금만 견디면 돼”라는 노랫말에 “조지 부시!”라는 후렴구를 힘차게 외쳤다고 한다.

 독설이 넘쳐나지만 뮤지컬은 ‘힐링’을 표방한다. 주변에 흔한 인간 군상을 통해 공감대를 쌓기 때문이다. 한국 측 프로듀서 설도윤씨는 “판타지 뮤지컬과 전혀 다른 빛깔의 이야기로 뮤지컬의 지평을 넓혔다”라고 말했다.

 ◆뮤지컬 ‘애비뉴Q’ 내한공연=8월 26일∼10월 6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5만∼13만원. 1577-3363.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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