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통조림웃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고향을 떠났기때문에 집안의 제사에 참여할 기회가 적었지만, 어릴적에는 그래도 사내자식의 하나라고 어른들틈에끼여 제사참례하던 기억은 무슨 까닭인지 오래 남아있다. 새벽에 두들겨 깨워져 일어나보면 벌써 이부자리도 치워지고 어른들은 갓에 다도포에다 장엄한 차림을하고 있는데 차가운 물에 형상만의 세수를하고 찬 마룻바닥에서 어른들틈에끼여 부복을 하느라면 어찌도 그시간이 긴지 무릎이 아프고 무릎이 근질거려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다가는 꾸중을 듣곤하였다.
그럴때도 감탄해 마지않던 기억은 어른들의 곡소리가 어린마음에도 사람따라 장엄하고 듣기좋기도하고 혹은 또 경박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며 부인네들의 야단스런 울음소리도 사람마다 성격대로 달랐던일이다. 제관들이 일제히 곡을 하다가는 그치고 또 헛기침소리를 신호로일제히 다시 시작하고 하는데는 어떤 율동적인 쾌감마저 느꼈던것같다.
희랍에서는 현재까지도 사람의 임종이 가까와지면 아낙네들을 사모아서 머리맡에 앉아 지키게하는데 갈가마귀 때같은 이들은 병자를 지키고 있다가 숨끊어지는 순간에 일제히 통곡을 시작해서 그들의 벌이를 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에 상통되는 인간풍습의 일면인데 여기에도 물론 일리는 있다. 옆에서 울면 슬픔은 그것으로써도 더해지기때문이다.그러나 그렇다해도 의례·형식으로서의 곡이라는것이 우스운 노릇임은 말할것없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텔리비젼」에서도 사용하지만 희극·만담에서 우습지도 않은 시시한행동이나 대화끝마다 미리 녹음해둔 웃음소리를 터뜨린다. 이른바「통조림웃음」을 삽입함으로써 청중에게 웃음을 전염시키려는 것인데 결국 장례때의 통곡대의 고용과 본질적으로는 다를것이없는일이다.
「가정의례준칙」이 새로 정해져서 허식과 형식에 흐르던 폐단을 없애고 시대에 맞는 간소화된 양식으로 고치게 하는데에는 아마 아무리 고루한 노인이라도 별로 반대할 자신을 못가질것이다. 서로 체면보고 눈치보느라고 감히 단행하지 못하던 것을 위에서 누르는 기세를 빙자해서 마지못하는체 따라가면 체면도 손상이 덜된다.
이번의 의례군칙에 상례에서 의곡을 어떤식으로 정했는지 아직 모르지만 여기에도 미묘한문제가 있을것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