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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 건군40년|세계최소 종교 독립국|로마 정신규 통신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40년 전 오늘(2월11일)은 「라테란 협정」에 따라 「바티칸」 시국이 탄생한 역사적인 날이다. 1922년 「파시스트」에 협조한 교회와의 사이에 1929년2월11일 「파테란 협정」을 성립시켜 오늘의 「바티칸」시국을 탄생시키고 완전한 독립을 인정했다.
「바티칸」 시국이란 「로마」 교황정청을 중심으로 하는 인구 약 1천명, 면적 4백40평방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소의 이른바 「종교독립국」이다. 국가원수는 교황인데(현 교황은 「바오로」6세, 2백62대 교황) 국무원과 대심원 그리고 다수의 부속기관이 있으며 교황은 추기경단 및 공의회와 더불어 입법 사법 등 모든 권력을 행사한다.
「바티칸」 시국은 국제적으로 외국과 독자적인 외교관계를 맺어 대·공사를 교환하는 외에 독립된 사법·경찰·통화·우편 등의 제도를 갖고 있으며 방송국과 철도 등도 경영하고있다.
1506년에 창설된 「스위스」 용병의 군대는 이태리 귀족의 자제 등에서 선발된 호위병과 더불어 「바티칸」 시국의 화려한 장식물이 되고 있다.
「로마」 시내 서편 「바티칸」언덕에 위치한 세계최소의「종교독립국」, 「바티칸」시국은 세계에 산재해 있는 6억의 「가톨릭」 신자를 바탕으로 전세계에 정신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교로 미움도 받아>
이같은 특별한 위치와 성격을 지니 「바티칸」시국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볼 때 좀더 거슬러 올라고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서력 기원 60연대는 「네로」폭군의 전성시대-.
64년 「로마」에 대화가 발생했을 때, 폭군 「네로」는 시내 중심가 「베네치아」 광장 근처에 있는 이른바 「네로」 탑에 올라가 불 구경을 하면서 또 하나의 흉계를 꾸몄다.
『「네로」가 「로마」시를 재건키 위해 방화했다』는 뜬소문이 시중에 나돌았기 때문에 그는 이 혐의를 「그리스도」교도에게 뒤집어씌우기로 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교로서 일반으로부터 미움을 받고있던 「크리스트」교도들은 이같은 「네로」의 흉계 때문에 다수가 희생되었다.
때마침 「로마」에 들렀던 사도 「바오로」와 「로마」에서 포교에 종사하고 있던 사도 「베드로」도 이때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이 「로마」제국에 있어서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최초의 박해인 것이다.

<햇빛은 3백13연에>
순교자가 나오면 나올수록 「그리스도」교는 그 세력이 확장되어 처음에는 도시의 하층 사회에만 신도를 갖고 있었으나 차츰 귀족과 황제의 일족 사이에서도 신자가 생겼다.
이러는 동안에 「그리스도」교의 황제 숭배거부, 이교로서의 성격 때문에 서기 2세기에서 4세기초에 이르는 동안 끈질긴 단속과 박해는 계속되었다. 역대의 황제들에게는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그들의 권위를 추락시키며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박해는 더욱 조직적이고 본격적으로 행해졌었다.
그러나 서가 3백13년 「콘스탄틴」황제는 교세를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저 유명한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 선포했다. 「콘스탄틴」황제의 이같은 조처는 통일제권을 수립하는데는 오히려 「그리스도」교도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취해진 것이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는 「로마」에서 처음으로 햇빛을 보게 되었다.
기원3백79년, 「테오드시우스」황제가 「그리스도」 교를「로마」의 국교로 선포하자 도리어 종래의 다신교는 이교로 탄압 받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도들은 이교신전을 부수고 그 석재를 사용 교회당의 건설의 「붐」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는 구 신전이 그대로 예배당으로 사용된 곳도 많았다.
「그리스도」교의 국교화에 따라 교회의 조직이 정비된 것은 물론이다.
「로마」사교는 6세기께부터 교황(법주)이라 불리고 「가톨릭」교회의 주재자로서의 권위를 굳혀 「로마」시와 그 주변에 대해서는 세속적인 일에까지 지도적 역할을 해서 시실상 군주와 같은 맹세를 했다.

<세계 평화 위해 전력>
1940년 이태리가 주축국으로 참전한 후 「바티칸」의 도 계는 이태리 정부에 의해 소외되었으며 모든 행동의 억제를 받았다.
이갈은 어려움, 속에서도 교황 「비오」12세는 「바티칸」시국의 중립을 고수 세계 평화를 위해 진력했다.
오늘날에는 가톨릭 인민당의 후신인 「그리스도」교 민주당이 장기 집권하여 국가와 교회간에는 어느 때보다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국 이태리의 국민생활에 있어 국가가 중심이 되어 일요일마다의 「미사」를 비롯, 교회의 모든 행사는 민족적 행사로서 실시되고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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