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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병원수출·의료관광으로 2020년 11조원 수익 목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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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호 04면

“며칠 전 아부다비에 일본 후생노동상(우리의 복지부 장관)이 날아왔다.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환자를 받아줄 수 있고, 아부다비에 고품질 병원도 지어줄 수 있다고 아주 공격적으로 프로모션을 하더라.”

한국 맹추격하는 일본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의료박람회 참석차 방한한 아부다비 보건청의 A 국장은 친하게 지내온 우리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만나자 이렇게 귀띔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또 우리 복지부에 잇따라 사람을 보내 아부다비·두바이와 환자의료 송출협정을 어떻게 맺을 수 있었는지 캐물었다고 한다.

 2010년 여름에도 일본 경제산업성 사무관 2명이 주한 일본 대사관원 1명을 대동하고 서울 안국동의 복지부 청사를 찾았다. 이들은 사흘간 서울에 상주하며 복지부 관계자들에게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해 의료법을 고쳤다는데 내용이 뭐냐” “환자 유치에 관련된 부처들을 어떻게 조율하느냐”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이들의 방한목적은 1년 뒤 확인됐다. 이듬해 7월 13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중국·러시아·베트남·캄보디아 등 4개국 6개 지역에 병원진료 서비스와 의료기기를 세트로 제공하는 ‘병원 해외수출’을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 배워간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 유치에다 병원 수출까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띄워 올린 것이다.

 해외 의료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일본이 무서운 기세로 떠오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올 초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문부과학성·후생노동성·경제산업성 관계부서를 합쳐 ‘범부처 의료산업 총괄사령탑’을 신설했다. 병원수출과 의료관광으로 2020년까지 1조 엔(약 11조3000억원)의 수익과 5만 명의 고용창출을 이루겠다는 게 목표다.

 이에 따라 후생노동성 등 여러 부처에 나뉘어 배정됐던 의료 지원 예산 3500억 엔(2012년 환율기준 약 4조5325억원)의 배분권이 이 총괄사령탑으로 일원화됐다. 예산 중복 등 낭비적 요소가 사라지고 관련 부처 간 협업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의 올해 생명복지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은 1조8000억원에 불과하고 복지부를 비롯한 여러 부처에 나뉘어 배정돼 있다.

 일본의 이번 공세도 한국을 벤치마킹한 뒤 나왔다. 지난해 12월 정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일본 문부성 차관을 지낸 고위급 인사가 주한 일본 대사관 관계자 등을 데리고 찾아왔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의료복지 연구개발 예산 1조8000억원의 부처 배정권을 부여받은 기구다. 일본 인사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측에 예산 을 부처별로 어떻게 배분하는지 꼼꼼히 캐물었다고 한다. 거기서 배워 간 결과가 총괄사령탑의 신설로 나타난 것이다.

 이뿐 아니다. 일본은 유도만능줄기(IPS) 세포에 4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민관 공동으로 난치병 신약개발에 나설 방침이다. 알츠하이머 등 뇌질환 관련 연구에도 연간 12억 엔을 투입할 방침이다. 일본은 뇌과학 연구 관련 예산만 연간 300억 엔(약 3885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 복지부 연간 연구개발 예산 전액에 해당한다. 일본은 또 지난 4월 17일 도쿄·오사카·나고야에 ‘의료 관광 특구’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특구엔 외국 병원 설립을 허용하고 외국인 의사면허 보유자가 진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 의료통역사를 도입하고 영어 사용 구급차와 약제사를 두며 긴급 의료 상담 콜 센터도 외국어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다. 의료기기·의약품의 상호승인도 추진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벤치마킹 대상은 싱가포르였다. 2009년 기준 외국 환자 유치율이 한국의 10배에 달하는 싱가포르는 지난해 약 100만 명의 환자를 유치하고 30억 달러(GNP의 1.1%)의 외화수입을 올렸다, 치료목적 입국자의 비자발급 기간을 사나흘로 단축하고 입국부터 치료·숙박·관광·쇼핑·귀국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해줘 외국인 환자의 86%가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이 이런 수준에 도달하려면 줄여야 할 규제가 많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추격을 받게 된 모양새다.

 홍민철 한국의료수출협회 사무총장 등 전문가들은 “일본은 한국 의료수출의 가장 큰 위협”이라 지적했다. 이들은 “러시아를 필두로 중동과 중국 등 우리 의료계의 주요 시장을 일본이 그대로 공유하기 때문”이라며 “암 치료 등 임상시술은 한국이 앞서고 있지만 일본은 워낙 의료 기초기술이 발달돼 있어 우리를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청와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의지를 갖고 의료수출을 촉진해야 일본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다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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