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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잠그는 중국 … 버냉키 쇼크 이어 'CC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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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차이나 크런치(China Crunch, 중국 돈가뭄)’가 일단 주춤해졌다. 21일 블룸버그통신은 상하이 금융시장 소식통의 말을 빌려 “이날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이 급전을 수혈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 덕분에 하루짜리 초단기 자금의 금리가 연 8%대로 떨어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13% 선을 넘볼 태세였다. 그렇지만 현찰 가뭄은 여전하다. 요즘 글로벌 시장에서 이 금리는 0~3%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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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차이나 크런치가 실물경제나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경제정책 사령탑인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저우샤오촨 행장의 공동 작품이다. 1980년대 미국의 볼커 쇼크(Volcker Shock)와 닮은꼴이다.

폴 볼커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80년대 초반에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고 시중 자금을 빨아들였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충격요법이었다. 저우샤오촨 행장은 이달 7일께부터 인민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가는 돈줄을 차단했다.

 파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시중은행 특히 군소 은행의 돈가뭄이 심해졌다. 저우샤오촨이 돈줄을 죄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뒤인 14일엔 중국 정부가 내놓은 국채가 제대로 팔리지 않는 일도 벌어졌다. 시중은행 등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리커창 총리는 19일 국무원 성명에서 “시중은행은 현재 자금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며 “금융 위험을 줄이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차이나 크런치가 빨리 끝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이 돈줄을 죄는 까닭이 무엇일까. 신용거품을 잡기 위해서다. 중국 기업·가계·정부 부채는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3배 정도다. 지난해 중국 GDP가 52조 위안(약 9500조원) 정도니 전체 부채 규모는 120조 위안(약 2경1960조원) 정도 된다.

 올해 중국 전체 부채는 GDP의 2.4배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인 데이비드 립턴이 이달 초 베이징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신용거품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주범은 중국판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이다. 그 중심에 투신사 67곳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 금융회사는 부유층으로부터 유치한 돈에다 시중은행이나 단기자금 시장에서 빌린 돈을 더해 머니게임을 벌이고 있다. 최근 주택버블을 더욱 심화시킨 주범으로 꼽힌다.

 대륙의 그림자 금융이 빌려 쓴 돈은 중국 정부가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퍼붓던 2009년부터 급증했다. 지난해엔 전체 부채의 20% 남짓(약 24조 위안)까지 불어났다. 미국 금융을 뒤흔든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 전체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크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중국이 금융위기를 겪는다면 그림자 금융 때문일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리커창과 저우샤오촨이 일으킨 자금난은 투신사 등에 뭉칫돈을 빌려주는 군소 은행들을 징벌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라고 전했다.

 리커창과 저우샤오촨이 성공할까. 볼커 전 의장의 충격요법이 성공하기는 했다. 70년대 후반에 시작돼 맹위를 떨친 인플레이션이 제거됐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80년대 초 더블딥(회복 뒤 재침체)이 바로 그것이었다.

 중국 실물경제가 요즘 심상찮다. 핵심 성장엔진인 제조업이 불황 국면에 들어섰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이런 때 볼커 쇼크 요법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베이징대 경영대학원인 광화관리학원(光華管理學院) 마이클 페티스 교수(금융)는 이달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제정책 담당자가 거품을 관리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경기침체나 주택시장 위기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강남규 기자

중국판 ‘그림자 금융 (Shadow Banking)’ 은행이 아닌 금융회사들로 이뤄진 금융세계. 서방 그림자 금융은 헤지펀드·사모펀드·투자은행·페이퍼컴퍼니 등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중국 그림자 금융은 투자신탁회사와 사채업자 등이 핵심이다. 아직 금융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은행과 견줘 느슨한 감시·감독을 이용해 신용거품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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