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 특징 살린 자동차 디자인 점점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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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서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자동차 디자인 총괄사장(오른쪽)과 서도호 작가가 공동 강연을 했다. [사진 이노션월드와이드]

세계적인 국제광고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 칸. 18일(현지시간) 서양을 대표하는 자동차 디자이너와 동양을 대표하는 설치미술 작가가 이곳에서 특별한 공개 만남을 가졌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리는 피터 슈라이어(60) 현대·기아자동차 디자인총괄 사장과 한국 대표 설치미술가인 서도호(51) 작가가 주인공. 행사 장소인 팔레 드 페스티벌의 드뷔시 홀에 이들이 등장하자 세미나 홀을 꽉 채운 500여 명의 관객이 박수로 그들을 맞았다. 두 사람은 ‘디자인과 예술, 동양과 서양이 만나다’를 주제로 공동 강연했다. 슈라이어 사장은 “디자인이야말로 브랜드 정체성을 세워 차별화하는 핵심”이라며 “내 브랜드의 디자인 정체성 안에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시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현대차 계열 광고회사 이노션월드와이드가 조직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칸 세미나의 일환으로 마련한 것이다.

 ▶서도호=“피터는 ‘직선의 힘’을 자동차 디자인에서 강조한다. 단순한 것, 그렇지만 아름다운 것을 디자인하기란 힘든 일이다. 필요 없는 것들을 계속 더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피터가 디자인한 기아의 K시리즈에서는 이런 단순함의 미학이 드러난다. 원칙과 가치관을 고수해야 한다.”

 ▶슈라이어=“내 창조성의 원천은 음악과 예술이다. 회화·조각에 대한 관심을 디자인으로 연결한다. 틀을 깨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준다. 예술과 디자인은 공통적으로 자발성과 즉흥성이 중요하다.”

 ▶서도호=“나는 전 세계 사람에게 모두 어필하는 ‘절대적·보편적 미’가 있다고 믿지 않았다. 어떻게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널리 팔리는 차를 디자인하나.”

 ▶슈라이어=“대중을 염두에 두고 시장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일관성 있는 내 디자인에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더할 뿐이다. 자동차회사들이 글로벌화되면서 각 나라의 특징을 살린 자동차 디자인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서도호=“예술가도 시장에 따라 작품을 다르게 만들지는 않는다. 예술가 또한 자기만의 색깔을 오랜 기간 파고든다. 디자이너와 예술가가 다른 점은 각 프로젝트의 기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6년, 10년에 걸쳐 장기간 완성하는 작품이 있다. 오랜 기간이 걸려도 추구하는 가치관은 바뀌지 않는다.”

 ▶슈라이어=“자동차 디자인은 단순히 한 제품의 성공, 한 회사의 이익을 넘는 일이다. 차 디자인은 그 차가 생산되는 도시 내지는 한 나라에 정체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영국 런던의 택시나 미니 올드모델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피아트의 500이나 미국을 상징하는 포드 머스탱, 독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포르셰911도 비슷하다. 그래서 한국 회사의 자동차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는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서도호=“도시의 인상을 좌우하는 요소들은 모두 A로 시작한다. 유형은 건축(Architecture)·의상(Attire)·자동차(Automobile)며, 무형은 향(Aroma)·분위기(Atmosphere)·태도(Attitude)다.”

최지영 기자

피터 슈라이어 아우디 TT와 폴크스바겐 뉴비틀 등의 디자인을 주도했다. 2006년 기아자동차 디자인총괄 책임자로 영입돼 ‘호랑이 코’ 그릴 및 직선으로 단순화된 디자인을 도입했다. 올해 부터 현대자동차의 디자인까지 총괄하고 있다.

서도호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 로드아일랜드대와 예일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뉴욕 PS1그룹전을 시작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뉴욕 휘트니미술관,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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