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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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 가난 그 자체야 죄 있을리없다. 오히려 부자는 천당에 가기 어렵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간난이야말로 죄의 모체역할을 잘도해내니 이「아이러니컬」한 일들에 당혹을 이겨내지 못하는때가 많다.
○…며칠전의 일. 기차역 앞을 지나는 길이다. 후미진 골목에서 아낙네들이 새까만 얼굴들로 탄가루를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탄가루가 바람에 날아간 그자리에는 보리 낟알들이 남는 모양이다. 하역작업을하는 틈새에 땅에 떨어진 곡식을 쓸어담아와서 바람에 불리고 있는 광경을 무심한듯이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리려 할 때다. 아낙네 옆에 같이있던 소녀가 금방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돌아섰다. 「숙」이였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하고 영리한 이이인데 워낙 가난하여 학교에도 나오다 말다하는 숙이다. 숙이는 죄아닌 가난한 행위에 대해서 무슨 큰 죄나 지은 것처럼 당황하고 무안해 하는 것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고 참된 사람을 만들어주는 시련이라고 하기에는 어린 숙이에게는 너무 가혹한것같다.

<심규택·교사·경북포항시 포항고등기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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