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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의 수상한 행동강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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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금융위원회가 최근 소리 소문 없이 내부 ‘공무원 행동강령’을 개정했다. 과다한 강연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인 처벌 기준을 마련한 게 개정안 요지다. 지금까진 금융위 공무원이 민간기업·산하단체로부터 지급기준(장관은 시간당 40만원, 차관은 시간당 30만원 등)을 초과하는 강의료·회의료를 받아도 처벌하기가 애매했다. ‘해당 공무원을 징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처벌 기준이 두루뭉술하게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행동강령에선 ▶1차 위반 시에는 주의 ▶2차 때는 경고 ▶3차에서는 경징계 의결 요구 식으로 징계 수위가 구체화됐다. 이 안이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대가성 강연료’ 관행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런데 좀 더 뜯어보면 수상한 대목이 나온다. ‘불가피한 경우’라는 전제조건을 달긴 했지만, 면책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사후에 돈을 반환하거나,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는 경우 처벌을 생략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덧붙인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강연료를 받거나, 대가성 강연을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적발되더라도 돈을 돌려주기만 하면 과거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었는데, 행동강령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유사한 국내 법 판례를 보자. 대법원의 올 5월 판결에 따르면, ‘뇌물죄’의 경우 일단 뇌물을 받았다면 나중에 돌려줄 생각을 갖고 잠시 보관했거나, 실제로 반환했다고 해도 죄가 성립하는 데 영향이 없다. “상식 수준을 넘는 고액 강연료를 받는 것은 일종의 불법 금품수수·뇌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이를 돌려주면 면책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죄를 적용할 의지가 없다는 것”(민주당 민병두 의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위는 “본뜻은 과다한 강연료를 받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고, 불가피하게 받았다면 조속히 돌려줄 것을 촉구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공무원의 외부 강연은 정부의 정책 이해도를 높이고, 시장과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순기능이 많다. 문제는 고액 강의료가 기업체나 이익단체의 ‘보험성 뇌물’로 악용돼 정책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국민권익위에서는 공무원이 받는 강연료·회의료에 상한선을 두고 있다.

 국토해양부·미래창조과학부·해양수산부를 비롯한 다른 정부 부처는 별도의 ‘금품 등 수수 금지 위반 징계 양정기준’을 마련해 가벼운 금품수수에도 최고 ‘파면’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행동강령을 강화하는 추세다. 수상한 면책 조항에 대한 금융위의 해명이 궁색하게 들리는 건 기자뿐일까.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