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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폭력단체 엘·파타|중동 위기를 부채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아랍」연합과 「이스라엘」간에 전면 전쟁을 유발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팔레스티나·아랍」의 「게릴라」단체가 있다.

<지도자 「아라파트」>
이 단체의 으뜸가는 것으로는「엘·파타」「팔레스티나」해방 세력, 「팔레스티나」해방 인민 전성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엘·파타」는 가장 강력한 것이다.
「엘·파타」는 56년의 수에즈 전란 후에 조직되었으며 테러리스트인 「야세르·아라파트」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다.
암호명이 「압우·아말」인 「아라파트」는 자기 자신이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아랍」세계에서 「야세르·아라파트」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도 그 사람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라파트」는 그 사진을 둘러싼 모든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조국 찾는 「테러」>
『제발 개인을 신격화하지 말아요. 나는 다만 한 사람의 군인일 뿐입니다. 우리의 지도자는 팔레스타인입니다. 우리의 갈등은 우리의 조국을 되찾기 위한 죽음과 희생의 길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그 일을 성취하지 못하면 우리의 아들들이 성취시킬 것이고 그들이 그 일을 성취시키지 못하면 그들의 아들들이 그 일을 성취시킬 것입니다.』

<마치 야전군 장성>
「아라파트」의「엘·파타」가 커져서 대변인을 내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는 아랍 세계에서 특명전권대사격이 되었다.
「아랍」에 있는 그의 본부에서 밀사들의 배치 문제를 다루며 통나무 책상 위에 앉아있는 모습은 흡사 야전군의 장성 같다. 그러다가 게릴라의 습격이 성공적이었다는 보고라도 접하는 때는 밤낮 끼고 있는 검은 안경 너머로 그의 눈초리는 빛나고 좋아라 춤추기도 한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아라파트」는 어린 시절을 「호곡의 벽」안에 있는 한집에서 자랐다.

<10대에 화약 밀수>
지금 이 지역은 「이스라엘」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곳인데 그는『우리들의 집이 재건되는 것을 우리는 볼 것이다』고 비통한 어조로 말했었다.
1948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때 10대의 나이로 총포 화약의 밀수입자가 된적도 있는 「아라파트」는 그후 「푸아드」대학교(지금의 「카이로」대학교)에 등록했다.

<한때는 잡지 편집>
「푸아드」대학교에서 「아라파트」는 토목공학을 전공했으며 「팔레스타인」학생연맹의 의장직을 지내면서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도 깊이 연구했다. 「푸아드」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쿠웨이트」에서 내직으로 극단적 국가주의의 색채를 띤 잡지를 편집했다.
55년 「카이로」에 나타난 그는 군관학교에 입학, 폭발물을 전공했다.
1950년대를 통해서 그는 해외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학생들 속에 「세포조직」을 형성했으며 「알제리아」 혁명을 연구했다. 「엘·파타」의 대장들은 「페대인」이라고 불린다.

<예루살렘 총본부>
예루살렘에 총본부를 두고있는 「엘·파타」의 조직은 비밀의 베일 속에 가려져 있는데 67년의 중동 전쟁 때 추방된「팔레스타인」피난민 과 과거 20년간의 피난민을 합한 약 1백50만명이 인적 자원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엘·파타」의 「페대인」들은 67년에 「이스라엘」 점령지구 및 「이스라엘」 영내에서 1천건이 넘는 폭파 사건을 일으켰으며 9백명 이상의 「이스라엘」인을 사상시켰다.

<「알제리아」식 전법>
현재까지는 「엘·파타」가 소련으로부터 직접 원조를 받고 있다는 증거는 없고 「페대인」의 훈련은「요르단」「레바논」「이라크」 등지에서 행하여지고 있다.
이들은 모택동의 「게릴라」전법도 연구했으나 아랍 세계에서는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알제리아」식 게릴라 전법을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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