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세돌, 최강수(88)를 던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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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결승 1국>
○·이세돌 9단 ?●·구리 9단

제7보(84~95)=수를 몇 수까지 볼 수 있느냐고요? 경부고속도로처럼 뚫린 외길 수읽기는 100수까지도 가능하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 단 한 수 앞도 내다보기 힘듭니다. 한 수를 결정하면 다시 수는 세 갈래 네 갈래로 갈리고 안개 자욱한 그 길목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는 게 바둑이지요. 고수들의 세계에서도 이때 수의 강약을 결정하는 것은 감각이나 직관, 기풍 같은 것들이지요. 냉철한 수읽기나 계산과는 다른 것들이 한몫을 하게 됩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이세돌 9단이 흑 87의 시점에서 상상을 절하는 강수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과정을 보시지요. 아직 미생인 백 대마가 84를 선수한 뒤 86으로 움직인 것은 당연하겠지요. 여기까지는 쉬운 수읽기입니다. 구리 9단도 87로 뛰어나와 동태를 살핍니다. 이때 백이 ‘참고도’처럼 백1로 뛰어나가면 평이합니다. 그러나 흑이 2, 4로 대응하면 앞날이 녹록지 않다고 느낀 걸까요. 이세돌은 88로 붙이는 최강수를 던졌습니다. 전체적으로 흑보다는 백이 약해 보이는데도 크게 한판 붙자고 나섰습니다. 참고 때를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이세돌은 ‘지금이 승부수를 던질 때’라고 판단한 겁니다.

 흑을 쥔 구리 9단도 이런 도전에 참을 리 없고 그리하여 89부터 95의 절단까지는 외길 수순이라 할 만합니다. 88이 온 이상 피할 수 없는 수순이며 쌍방 호랑이 등에 올라타 내릴 수 없게 됐습니다. 이리하여 바둑은 아수라의 혼돈으로 빠져듭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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