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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의 회고 <국제경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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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8년의 국제경제는 전무후무한 「골드·러쉬」를 비롯한 큼직큼직한 사건의 연속으로, 한마디로 다사다난하고 시련 많은 한해였었다고 할 수 있다.
67년 가을의 「파운드」대평가절하 이후 수차 거듭됐던 금파동과 그중에도 특히 전세계 금융시장의 기능을 거의 마비상태에 빠뜨렸던 지난 3월의「골드·러쉬」, 그리고 이에 뒤이은 금이중가격제실시등은 현행의 국제통화제도를 뒤흔들어 놓고 창립이후 20여년을 경과한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모순을 크게 노출시켰다. 한편 불난서를 횝쓸었던 이른바 5월혁명의 후유증은 11월에 「프랑」화 평가절하의 위기로 나타났던 것인데 이것은 불난서 자체뿐만 아니라 「유럽」경제전체에 심각한 충격을 준 대사건들이었다.
68년의 국제경제동향을 개편한다면. 전반적으로 67년에 비해 침체를 못면했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세계전체를 통해 5%라는 경제성장의 목표달성이 어렵게되었다. 그렇기는 하나 수차의 위기에 직면하면서도 그때마다 기적적으로 이룩된 국제협력으로 국제경제는 결정적 위기에서 모면, 소강상태를 유지하면서 이해를 넘기게 되었다고 하겠다.
국제경제의 회고에 있어 우리의 느낌은 첫째로 국제경제에 내포되어 있던 불안정 요인과제도적 모순이 심각하게 노출되었다는 점이요, 둘째로 이러한 요인과 모순의 해결이 국제협조의 견지에서 모색되었다는 점, 그리고 셋째로 이러한 문제의 처리는 국제경제조직의 지원과 선진제국의 다각적인 국제협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점등이라 하겠다.

<「달러」불안과 금파동>
68년에도 미국의 국제수지의 악화경향은 국제경제에 있어 여전히 커다란 불안정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무려 37억「달러」에 달했던 미국의 67년 국제수지의 적자는 「존슨」대통령으로 하여금 68년초에 새로운 「달러」방위선언을 불가피하게 하였고 경상·자본거래면에서 급히 30억「달러」의 호전책을 강구하게 하였다. 그러나 년규모 3백억「달러」에 달했던 월남전비지출의 부담이 미국의 국제수지에 있어 20억「달러」이상의 적자를 낳게한 것을 바로잡지는 못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지난 3월말의 「존슨」대통령의 북송중지, 월남화평회의등 제안의 배경에는 심화된 국제수지악화를 해결하지 앉을 수 없는 미국경제의 고민과 초조가 있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미국이 강구한 각종의 「달러」방위조치에도 불구하고 「달러」불안은 의외의 진원에서 터져나왔다. 이것이 바로 지난 3월에 있었던 이른바 「골드·러쉬」였다. 「런던」시장에서 발단된 금거래 소동은 금의 대량수송에도 불구하고 금가격의 정상회복을 불가능케하고 금가격은한때 1「온슨」당 35「달러」의 공정시세를 훨씬 넘어서 42「달러」에 육박하였다. 이러한 금파동은 결국 순식간에 열병처럼 「유럽」각국에 파급되어 이로 말미암아 세계의 금융시장은 폐문소동까지 벌여 드디어 그 시장기능은 2주간이나 정지되었었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미국은 해외당국이 보유하는 「달러」에 대해 공정가격으로 금태환에 응해야할 국제적의무를 스스로 부과함으로써「달러」로 하여금 기축통화의 역할을 다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는 국제적으로 안정되어야 했고 또 그것은 동시에 금가치의 안정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골드·러쉬」로 인한 금가격의 앙등을 억제할수 없게 됨으로써 공정시세이외에 자유금시장에서 형성되는 자유금시세를 인정하게 되고 금이중가격실시가 불가피하게 되었던것이다.

<「프랑」화의 위기>
「파운드」화절하에 하등 영향을 받지 않고 강세를 과시한바 있던 「프랑」화의 가치는 이른바 5월혁명을 계기로 흔들리기 시작, 그간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둣 치솟아오른 금및 외화준비고는 일시에 격감하여 「프랑스」경제에 치명적인 암영이 깃들이기 시작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11윌에는 「프랑」화의 대량투매와 금및 「마르크」화의 매기왕성으로 그 평가유지가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프랑」화 위기에 대처한 10개국 재상회의는 30억「달러」의 지원으로 「프랑」화의 평가절하를 종용하는 한편, 「마르크」화의 평가조정도 논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예상을 뒤집고 「드골」대통령의 단호히 「프랑」화 절하를 거부하는 동시에 외환의 전면통제·초긴축재정 금융정책의 채용으로 평가유지를 결의하여 전세계를 아연케 하였다.
이리하여「프랑」화 위기수습의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현행의 국제통화제도하에서 평가유지의 문제는 특히 선진제국에 공통적으로 부과된 커다란 골칫거리로 등장하였다. 국제유동성의 보강도 평가유지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며 현 통화제도를 전제한다면 인류의 예지의 소산이라 일컫는 SDR(특별인출권)의 창출에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68년에 들어와서 선진제국이 모두 SDR창출준비를 서둘렀고 현IMF체제하의 고정환율제에 대한 재검토의 소리가 높아 졌다는 점과 또 국제통화 회의 소집이 준비되고 있다는 점등은 진통을겪고 있는 68년 국제경제의 단면을 보여 주는 둣 하다.

<남북간제의 새국면>
「개발 60년대」를 얼마 남기지 않고 남북문제는 지난 2월「뉴델리」에서 열렸던 제2회 국련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진지하게 토의 되었다. 난항을 거듭한 끝에 저개발국의 제품·반제품에 대한 선진국의 특혜적수입조치에 관해서 어떤 결논에 도달 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또 대저개발국원조의 목표액을 선진국의 국민소득의 1%에서 GNP 1%로 사실상 인상키로 한 결의도 또한 환영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른바 특혜공여나 원조액 증대가 단순한 결의나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저개발국의 수출증대와 자본재도입증가에 기여하기 까지에는 아직도 타결되어야할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는 것이 또한 엄연한 현실임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한국과 국제경제 환경>
끝으로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68년의 국제경제환경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파운드」화 평가절하로 인하여 대 「스털링」지역 수출에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하였으며한편 미국의 면제품수입제한과 수입세 부과 문제가 다시금 논의되어 대미수출의 전망을 몹시 흐리게 하였다.
그러나 자본 거래면에서 볼적에 선진제국의 통화불안으로 68년을 통하여 다각적인 자본협력에는 적지않은 제약이 있었던 것은 못내 유감이라 아니할수없다.
아무튼 한국으로서는 이렇듯 다난했던 국제경제 환경 속에서도 「오세아니아」·동남아제국등과의 경제협력의 길을 마련하고 그 강화를 위하여 일보의 전진을 한 것은 68년이후 우리가 한국의 좌표를 능동적으로 설정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을 나타낸것으로 보아 장래에대한 기대를 걸게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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