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 우승컵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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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저스틴 로즈가 17일(한국시간) 끝난 US오픈에서 우승한 뒤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아드모어 AP=뉴시스]

“맞다. 하늘을 올려다본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였다. 오늘이 아버지 날(Father’s Day)이란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저스틴 로즈(33·영국)가 미국·영국에서 지키는 아버지의 날(6월 셋째 주 일요일)에 딱 맞춰 첫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아버지에게 바쳤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제113회 US오픈 트로피다.

 17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아드모어의 메리언 골프장에서 열린 최종 4라운드. 18번 홀을 파로 막아내 선두로 대회를 마친 로즈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버지 켄 로즈는 2002년 9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켄은 로즈의 첫 골프 코치이자 영원한 후원자였다.

 1오버파 공동 5위로 출발한 로즈는 이날 이븐파로 타수를 잃지 않았고, 필 미켈슨(43·미국·3오버파)을 2타 차로 꺾고 우승했다. PGA 투어 통산 5승째. 우승상금은 144만 달러(약 16억2000만원). 로즈의 US오픈 우승은 영국 국적 선수로는 1970년 토니 재클린 이후 43년 만이다. 로즈는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우승을 바칠 기회를 갖는 건 쉽지 않다. 오늘은 아버지가 더 생각났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우승 트로피를 품고 있는 로즈(왼쪽)와 올해도 우승하지 못하고 이 대회 여섯 번째 준우승을 기록한 필미켈슨의 표정이 대비된다. [아드모어 AP=뉴시스]

 아버지는 아들이 다섯 살 때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골프에 비범한 재능을 가진 아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서였다. 로즈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했고, 만 17세인 1998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 아마추어 선수로 출전(공동 4위)했다. 그러나 그해 프로 전향 이후 21개 대회에서 연속 컷 탈락했다. 당시 영국 언론은 “로즈는 아버지의 작품이지만 아버지의 욕심이 신동 로즈를 망쳤다”고 비난했다. 로즈는 16세부터는 학교를 떠나 골프에만 전념하느라 또래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당시는 프로선수로서 삶에 대한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로즈는 아버지를 여의고 2006년 결혼한 아내 케이트를 만나면서 골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PGA 투어 입문 7년 만인 2010년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딸의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느라 대회 당일 새벽 3시30분에 공항에 내린 미켈슨은 3라운드까지 단독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이날 4타를 잃는 바람에 US오픈에서만 여섯 번째 준우승의 징크스를 이어갔다. 타이거 우즈(38·미국)는 프로 전향 이후 US오픈에서 최악의 성적(13오버파·공동 32위)을 냈다. 재미동포 마이클 김(20·한국명 김성원)은 공동 17위로 아마추어 중 최고 성적 선수에게 주는 실버 메달을 받았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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