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 바다인 한국, 바다 빼고 미래 논하는 건 난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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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종구 회장이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어업정보통신본부 상황관제시스템 앞에서 국내 어업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연근해 조업 어선은 3048척이었다. [오종택 기자]

6월 16일은 ‘세계 수협의 날’이다. 2010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수산위원회가 ‘서울선언’을 채택한 날이다. 서울선언은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목표로, 6개 항의 실천강령을 담고 있다. ‘서울선언’ 이후 매년 6월 16일, 전 세계 수협인이 한자리에 모인다. 2011년엔 서울, 2012년엔 베트남, 올해는 인도네시아다.

 지난 13일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이종구(61) 회장을 만났다.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열리는 제3회 세계 수협의 날 행사 참가를 위해 출국하려는 참이었다. 조용히 제 할 일만 하던 전 세계 수협인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각종 현안을 논의하게 만든 주인공이 이 회장이다.

 “2009년 ICA 수산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수십년 일본이 맡아온 자리로, 한국이 의장국을 맡은 건 처음이었어요.”

 그가 ICA 수산위원회를 맡은 지 3년. 세계 수협은 역동적으로 변화했고, 그는 그 공을 인정받았다. “제 노력보다는 한국의 수산업이 발전한 덕분이죠. 우리 수산업은 생산량에선 세계 13위, 수출로는 세계 18위입니다.”

 한국의 수협중앙회는 그동안 베트남·인도·태국 등 7개국에 수산 기자재와 정보화 기기를 지원했고, 각국 어업인들을 초청해 노하우를 전수했다. 『한국 수협의 지식공유』란 책도 냈다. 찰스 굴드 ICA 사무총장이 “협동조합 발전을 위해 가장 유효한 책”이라 평가한 책이다. 이 회장은 2011년 말 협동조합 최고의 영예인 ‘로치데일 파이오니어 상’을 수상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조개 양식업에 뛰어들고, 진해에서 수협조합장만 5번, 17년을 지낸 ‘바다 사람’이다. “높아진 한국 수산업의 국제적 위상과 달리, 국내 위상은 턱없이 낮아 안타깝죠.” 2007년부터 수협중앙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국내 수산업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자원 보호를 꼽았다.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지고, 원전·제철소 등의 산업시설이 바다를 오염시키면서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는 거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으로 힘들여 키워놓은 수산자원조차 강탈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력발전소 건설과 바다모래(해사) 채취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력발전소를 짓겠다며 남아있는 갯벌마저 파괴하려고 합니다. 건설업계에서는 모래가 부족하다며 해사 채취 재개를 요구하고 있고요. 모래가 사라지면 어류의 산란장과 서식지가 사라져 바다가 더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어업인들을 ‘묵묵히 집안일을 도우면서도 불평하지 않는 효자’에 비유했다. 50·60년대 수산물을 팔아 획득한 외화가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고, 지금도 한 해 140~150명의 어업인들이 파도와 싸우다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어촌 대부분이 낙후했어요. 교육·의료 혜택도 잘 못누리죠. 한·칠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타격이 엄청난데도 정부는 농·축산업을 주로 지원하죠. 수산업 지원금은 농·축산업의 1%에 불과합니다.”

 그는 2009년 ‘어업인교육문화복지재단’을 만들었다. 낙후한 복지·교육·문화를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부가 됐고, 뒤늦게 공부해 대학원까지 마친 자신의 삶이 배경이 됐다. 재단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정부, 기업은 외면했다. 수협 직원들과 수협 조합원들이 1달에 1만원씩 내는 ‘투게더 1%’ 운동 등으로 63억원을 모았다. 이 돈으로 어업인 대상 문화 강좌도, 경영마인드 교육도 했다. 올해부턴 어촌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줄 예정이다.

 “한국은 삼 면이 바다입니다. 바다를 떠나서 한국의 발전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친환경 고부가 산업으로 어업을 육성시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살 만한 어촌을 만들고 싶습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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