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 정말 대화할 생각이 있는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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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돌연 미국에 대화제의를 했다. 일요일(미국은 토요일)인 어제 발표한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다. 군사적 긴장 상태의 완화 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 없는 세계 건설’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회담을 열자는 것이다. 최근 무산된 남북당국회담 제안 때처럼 시간과 장소는 미국이 정하라고 했다. 이처럼 북한은 외부세계를 향해 ‘대화 공세’를 펴는 중이다. 그러나 ‘대화 공세’가 실질적으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담화는 한반도 긴장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미국이라고 강조했다. 6·25전쟁을 일으킨 것도 미국이요, 정전협정을 체계적으로 파괴한 것도 미국이라는 것이다.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온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주장이다. 김일성이 중국·소련의 승인을 받아 기습 남침한 것이 6·25전쟁의 시작이라는 것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사실로 확정돼 있다. 또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래 42만여 건이나 협정을 위반한 것이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불과 두 달 전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아무리 수천 번 거듭 주장해도 거짓이 진실이 될 순 없다.

 북한이 억지 주장을 펴는 건 핵 개발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다. 미국이 북한을 핵으로 위협하기 때문에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논리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선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이 먼저 종식돼야 한다는 것이다. 독불장군식 궤변일 뿐이다.

 북한이 확립된 세계 평화 질서를 무시하고 굳이 핵 개발을 선택한 것은 외부세계와 교류를 확대하면 생존하기 어려운 폐쇄된 독재국가임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심각한 인권 유린을 하지 않고선 정권과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개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핵 개발을 선택한 것이다. 나아가 주변국에 대한 핵위협을 통해 ‘안보 비용’을 지불토록 강요함으로써 체제 문제로 파탄된 경제를 어떻게든 끌어나가 보겠다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발상이다.

 6자회담을 거부하고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는 생각도 보인다. 북한의 핵 포기를 중심으로 논의 구조가 짜여 있는 6자회담을 재개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북한만의 핵 포기가 아니라 미국의 핵군축과 연계한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과대망상에 가까운 태도다.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이 담화를 발표하기 전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 인정할 수 없으며 대화 복귀만으로 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행동부터 취하라는 것이다. 중국 역시 북한의 비핵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진정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미국과 대화하길 원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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