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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와 도박심리] 한탕심리 쌓이면 중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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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로또 복권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면서 과잉 열기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우리나라의 도박 중독은 심각한 수준. 1년에 검거되는 도박사범만 3만4천여명에 이르고, 지난해 사행산업 규모는 1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병적 도박 유병률은 미국보다 많은 4.3%. 강북삼성병원 도박중독클리닉 신영철 교수의 도움말로 로또 열풍과 도박 심리의 문제점을 진단해본다.

◇복권 사는 것도 도박인가=도박은 '불확실성에 대한 내기'를 일컫는다. 따라서 복권 역시 도박의 일종인 것만은 틀림없다. 단지 경마나 카지노보다는 중독성이 약하다. 하지만 복권에도 사회적인 후유증은 있다.

우선 용이한 접근성이 문제다. 복권판매소가 가까운 곳에 있어 원거리에 있는 특정 장소에 가지 않고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마작이나 카지노처럼 기술을 배워야 할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청소년층까지 휩싸인다. 규정상 19세 이하에게는 못팔게 돼 있는 복권을 청소년에게 파는 행위에 대한 단속이 요청된다.

특히 로또는 기존 복권보다 도박성이 훨씬 크다. 첫째는 이월된 당첨금이 엄청나게 불어나 도박 심리를 부추긴다. 둘째는 기존 복권과는 달리 판매된 액수의 비율로 당첨금을 정하기 때문에 '섰다판'에서 판돈이 불어나는 듯한 쾌감을 느낀다.

셋째, 기존 복권과 달리 로또는 자신이 번호를 정하기 때문에 '내 기술과 재주'가 통할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도박이 갖는 흥미를 고루 갖췄다는 얘기다.

◇도박에 취약한 사람은=도박에 빠져드는 사람은 광고 문안대로 '인생역전'을 하고 싶은 계층이다. 성실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일확천금이 어려운 서민층, 또 불량신용자로 빚에 몰린 사람들이 많다.

복권을 사는 사람의 10%도 문제성 또는 병적 도박자들로 추산된다. 돈을 빌리거나 생활비를 털어 사는 사람이라면 병적 도박을 의심해도 좋다.

쉽게 중독에 빠지는 유형은 크게 두가지. 첫째는 자극추구형이다. 경쟁적이고 모험심을 즐기며 에너지가 넘친다. 이런 유형은 남성에게 많다. 최근엔 자극을 촉발하는 노에피네프린같은 호르몬이 관여한다는 연구도 나온다.

둘째는 우울극복형이다. 이들은 내성적이며 온순하지만 세상 사는 재미를 잘 모른다. 이들이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 도박에 빠진다는 것. 우울과 관련된 도박중독은 여성, 특히 중년 이후 주부에게 많다. 이런 성향이 있는 사람은 복권열풍과 같은 사회 환경이 주어지면 도박 중독에 쉽게 빠져든다.

◇열풍 뒤의 후유증=화려한 도박 도시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선 매년 1천여명의 자살자가 속출한다. 꿈과 희망의 도시가 아니라 좌절과 고통의 도시라는 것이다.

일확천금의 환상은 근로의욕을 저하시킨다. 쥐를 대상으로 한 노력과 보상 관련 실험을 보자. 버튼을 누르면 먹을 것이 쏟아져나오는 자동 배식기 앞에서 쥐는 다른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버튼을 힘겹게 눌러야 음식이 나오면 쥐는 배식기에 관심이 멀어지면서 먹이를 구하기 시작한다.

노력과 보상이 균형을 이뤄야 이상적인 사회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실험이다.

건전한 사회 에너지가 엉뚱한 곳에서 낭비되는 문제점도 있다. 월드컵 때 보여준 단합된 국민열기가 복권 열풍으로 왜곡된다는 것. 근면보다 언젠가는 '한방'에 끝낸다는 가치관의 전도 현상도 지적된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도박과 게임의 경계선이 흐려지면서 도박을 용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신교수는 "복권으로 발생하는 단기적인 수익이 자살률.이혼.우울증 등 장래 국가가 짊어져야 할 부담보다 크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면 지금과 같은 복권열풍은 당연히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종관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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